바람의 영웅, 칭기즈칸.
뭍의 대양(大洋·칭기즈), 몽골초원에서 폭풍처럼 일어나 몽골고원을 휘몰아치고 중원과 중앙아시아 동유럽을 질풍노도처럼 헤쳐간 ‘푸른 이리 눈’의 사나이.
바람처럼 일어나 바람처럼 사라진 천년영웅.
태어날 때부터 핏덩이를 움켜쥐고 나와, 이리의 한(恨)과 분노의 불꽃을 간직했던 어린 칭기즈칸, 테무친. 자라서는 천둥이 울고 땅이 피를 토하는 초원의 광풍으로 내달리다, 마침내 사막의 한 점 먼지로 사라진 거대한 역사의 고향.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95년 지난 1천년을 돌아봤을 때 세계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 인간으로 칭기즈칸을 꼽았다.
왜? 왜, 지금 칭기즈칸인가.
그는 인류가 지나온 1천년의 실체로서, 앞으로 나아갈 1천년에도 지워질 수 없는 역사의 거울로 여전히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가.
이재운의 대하역사소설 ‘천년영웅 칭기즈칸’(전8권).
밀리언셀러 ‘소설 토정비결’의 작가. 그는 왜 10년동안 수도자가 고행(苦行)의 길을 가듯 칭기즈칸에 매달렸을까.
서양의 아시아 정복은 근대화라 부르고 몽골 군단의 서양 지배는 ‘황화(黃禍)’라고 부르는 서구의 왜곡된 시각, ‘오리엔탈리즘’의 편견에 대한 반발인가(이어령교수).
아니면, 사람들이 저마다 제한된 삶의 조건 속에서 꿈꾸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 그 비일상적인 축제의 무대에 당당히 들어서는 눈 푸른 초원의 이리, 칭기즈칸을 만나고자 함인가(시인 고은).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옛조선 부여 고구려가 소용돌이치던 땅, 언제나 그리움으로만 구전되던 상고(上古)의 터전,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발원했던 북방 고원은 우리 민족에게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정신의 숙영지(宿營地)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 그 꿈꾸는 대륙의 공간…. 칭키즈칸의 측근인 나친의 입을 빌어 작가는 고려인 사영에게 이른다.
“너희야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으니 북방에 사는 사람이면 죄다 오랑캐로 보겠지. 그러나 어쩌면 너희 몸 속에도 푸른 이리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 몰라. 솔롱고스(고려인)의 조상도 원래는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살던 몽골족의 한 부류였다지….”
하기야, 칭기즈칸의 엉덩이에도 퍼런 몽골반이 있었을 테고, 우리 엉덩이에도 삼신할머니의 손바닥 자국이 퍼렇게 남아 있지 않은가. 칭기즈칸이나 우리나 선녀와 나뭇꾼, 흥부전 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자라온 같은 몽골리안이 아니던가.
소설 칭기즈칸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사실(史實)들의 뜨거운 입김으로 가득하다. 시종 긴박감을 준다. 역사를 역사가의 손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소설가의 오기와 뚝심이 느껴진다.
고려 무신란 초기, 시대적 배경을 ‘이리떼’가 들끓는 북방 고원에 이입(移入)시킴으로써 세계사의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한반도의 중심과 잇는 ‘자존심의 묘미(妙味)’를 살려나간다.
그리고 하나 둘씩, 서양의 ‘몽골 콤플렉스 필터’를 걷어낸다. 몽골군을 맹목적인 파괴자요, 잔인한 학살자의 야만집단을 치부하는, ‘몽골군이 지나간 뒤에는 먼지만 남는다…’는, 조작된 신화의 허구를 벗겨낸다.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하고 그 위에 유목민의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 그는 글로벌리즘과 세계 시스템의 원조(元祖)로서 새롭게 자리매김된다. 기실, 몽골제국은 고려에서 폴란드나 모스크바까지 가는데 누구나 숙식을 보장받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완전무결한 자유무역과 자유왕래가 허용된, 무국경 무비자의 천국이 아니었던가.
소설로 만나는 칭기즈칸.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서구 황화론(黃禍論)의 장막을 걷고, 나아가 몽골을 오랑캐로 비하했던 중화(中華)의 벽을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모습의 칭기즈칸, 그 진면목과 마주하게 되는가.
책장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한 마디.
‘아시아를 알아야 서양을 안다….’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