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저녁 서울 서초동 코오롱스포렉스 볼링장. 갑작스레 울려나온 ‘빵빠레’에 손님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볼링장측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방금 1번 레인 다섯번째 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를 치신 손님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3게임만에 첫 스트라이크를 친 한솔PCS 인사팀 이기성팀장(40). 실수라도 했나해서 쭈뼜거리다 살그머니 손을 들었다. “전데요….”구매팀과의 팀대항볼링경기를 위해 20명 이상의 팀원과 함께 볼링장을 찾은 그였다.
“방금 귀하가 치신 스트라이크는 볼링장 개관 이래 10만번째입니다. 행운의 주인공이 되신 걸 축하드리며 저희가 마련한 경품을 드립니다.”
특급호텔 뷔페이용권 4장을 받아든 이팀장. 팀원들이 터뜨리는 폭죽과 박수 속에 IMF시대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환희’를 만끽했다.
다음날 오후 소관팀의 하나인 ‘기업문화TF팀’의 보고서를 챙기던 이팀장. 6월의 ‘기업문화주제’인 ‘팀장님, 힘내세요!’의 기획안을 보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연실색. “맙소사! 어제 일들이 전부 내 ‘기’를 살리기 위한 ‘녀석들’의 깜짝쇼였다니….”
깜짝쇼의 연출자인 팀원 박준천씨(28). “팀장이 3게임째 들어가는데도 스트라이크를 못쳐 마음을 졸였죠. 나중에 ‘거봐, 팀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냐’라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모두 즐거워했어요. ‘공모’ 과정이 공동운명체로서 팀워크를 다지는 계기도 됐습니다.”
한솔PCS는 6월을 ‘팀장들 기살리기 기간’으로 정해 아이디어를 모집했다. 우수아이디어로 뽑힌 6개팀에는 지원금 지급. ‘10만번째 스트라이크’ 외에도 엉뚱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다수 등장했다. △남자의 ‘기’는 ‘밤일’의 자신감에서 나온다며 남대문시장에서 구한 ‘비아그라’를 팀장에게 선물한 팀 △이혼후 딸만 고향집 부모에게 맡겨둔 팀장을 위해 부산까지 찾아가 ‘아빠 힘내세요’란 딸의 메시지를 비디오에 담아온 팀 △팀장이 사는 아파트의 주민들과 짜고 아파트단지 입구에 ‘듬직한 아빠 사랑해요. 000동 △△△호 김가족일동’이란 대형현수막을 내건 팀 △사무실에 ‘팀장가족파티’를 열어놓고 팀장만 뒤늦게 ‘업무상긴급호출’한 팀 등.
기업문화 TF팀(태스크 포스)의 김동렬과장(33)은 “위에서 ‘쪼이고’ 아래로부터 ‘받치는’ 팀장들의 기를 살려야 조직 전체에 활기가 넘치고 기업도 산다는 생각에서 기획했다”고 설명.
90년대 중반이후 상당수의 기업들이 ‘결정권과 책임의 하향분산’과 ‘의사결정의 신속화’라는 모토를 내걸고 앞다퉈 팀제를 도입했다. 직급은 부장이나 과장, 직책은 팀장인 이들은 대기업에서는 40대 중후반, 신생기업에서는 40대 초반의 중간관리자. 축구의 미드필더로 조직의 허리다.
하지만 IMF시대, 이들의 모습은 초라하다. D광고기획사의 마케팅팀장 정모씨(43). “현재의 팀장급들은 경기 좋던 80년대초 입사, 가정을 포기하고 ‘조직에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정리해고 ‘1순위’로 거론되며 눈치를 봐야하고 부하에게 해고사실을 통보하거나 봉급삭감 소식을 전하는 악역까지 해야 합니다.”
팀장의 어깨가 처지면 기업의 허리가 구부러진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