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 귀농族」는다…『일단 터잡고 처자식 부르자』

  • 입력 1998년 7월 23일 19시 45분


충북 제천군 백운면 운학2리 거문골 농장.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산속에 14명의 귀농자가 함께 살고 있다. 닭을 기르고, 상추잎과 깻잎도 따고. 이들 중 여성은 없다.

이른 아침 식사당번이 마당에 있는 진흙화덕 위 가마솥에 물을 끓인다. 군대처럼 청소당번 식사당번 작업조 운반조로 나눠 일한다. 뒷산에서 캔 더덕으로 구이를 해먹는다. 냇가에서 다슬기를 따다 올갱이국을 끓인다. 저녁에는 막걸리 한잔을 돌려 마신다. 남자들끼리 살다보니 술에 취해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다.

‘홀아비 귀농(歸農)’. 아내와 자식은 도시에 남겨두고 홀로 귀농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농사일을 경험하지 못한 도시민의 경우 연고지가 아니면 처음부터 처자식과 함께 농촌으로 내려오기 힘들기 때문.

농림부에 따르면 90년이후 98년2월까지 귀농가구는 7천7백54세대. 이중 30대가 40%가량으로 가장 많다. 한참 아이를 기르고 직장생활을 할 나이에 선택한 귀농은 가족에게 커다란 생활의 변화를 가져온다.

지난해 3월 충북 괴산의 도촌마을로 귀농한 김홍진(34) 박남정(33)씨 부부. 잡지기자였던 아내 박씨는 네살박이 아들과 함께 6개월간 남편과 별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부끼리 합의는 했지만 막상 귀농을 준비하는데 있어 이때가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

김씨는 버섯재배 교육을 받다 만난 이 고장 친구의 도움으로 농사일도 배우고 50만원에 빈 농가도 얻었다. 새벽에 깨어 “아빠한테 전화해”라면서 울음보를 터뜨리던 아들이 시골에 몇번 다녀온 뒤 “우리 아빠 농사짓는다”고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말할 정도가 되자 박씨는 직장과 집 등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남편과 합류했다.

“영화요? 장날에 읍내 나가서 보면 되지요.” 귀농한 김씨부부에게 유일한 오락거리는 컴퓨터 통신을 통한 농민끼리의 대화와 5일마다 한번씩 서는 장날 구경. 문화생활이 크게 줄었지만 자연속에서 더욱 돈독한 부부의 정을 느끼게 된 것이 더욱 큰 소득이다. 김씨는 “아직은 ‘텃밭가꾸기’수준이지만 아내와 하루종일 일하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이 귀농자 7천1백68명을 조사를 한 결과 가족 중 귀농을 가장 반대한 사람은 ‘아내’(68.5%). 주요 이유는 자녀교육문제, 힘든 농사일, 화장실과 부엌의 불편, 문화시설 부족 등. 경북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귀농자가 정착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평균 5년, 비용은 4천만원.

아내와 가족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방적’ 귀농은 가정 파탄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요즘 귀농학교에는 30대의 경우 부부가 함께 수강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지난해 10월 귀농학교에서 만나 결혼, 경기 가평군으로 귀농한 윤모씨(34)커플은 서로의 ‘이상’이 같아 농촌생활에 잘 적응하며 산다. 그러나 서울 마포구에서 생맥주집을 경영하다 홀로 귀농한 이일용씨(39)는 중학교 1학년짜리 아들이 시골로 내려오기 싫다고 해 고민. 아들은 ‘젝스키스와 서태지, 컴퓨터’에 빠져 있다.

귀농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자녀 교육문제. 요즘 시골마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학습지 선생님을 볼 수 있을 정도.

‘나홀로 귀농’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 마을’도 실험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서 조성키로 한 ‘생태마을’. 20여가구가 4만평을 경작할 수 있는 이 마을은 △유기농법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주거환경 △두레공동체를 지향하며 ‘푸른 꿈을 가꾸는 고등학교’, 마을센터, 태양열발전기 등 자급자족 시설도 갖출 계획이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