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대학선생이지만 논밭고랑에선 까막눈일 수밖에 없다.‘낫 놓고 기역자’부터 배워야 한다. 대체 콩은 언제쯤 심어야 하지? 마음 속으로 몇 월 며칠을 꼽으며 묻는다.
“할머니, 콩은 언제 심어요?”
“으응.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철학교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그렇구나. 곳곳이 흙이 다르고 내리는 비가 다르고 바람길이 다른데 어찌 씨뿌리는 시기가 한결 같을까. 감나무의 철맞이를 잣대 삼아 콩 심고 팥 심는 때를 가늠해온 시골 어른들. 이들이 오랜 세월 익혀온 눈썰미, 그 관찰과 경험이야말로 가장 큰 스승인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온 결실이 아니던가.
충북대 교수로 있다 이제서야, ‘막내아들을 농사꾼으로 만들겠다’던 아버지의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윤구병씨(55). 그가 농사짓는 짬짬이 살림에 보태 쓰려고 이런 저런 지면에 팔았다는 글들이 책으로 묶여졌다.
‘잡초는 없다’(보리).
저자 말대로 ‘다듬지 못해 허술하고 설익어서 떫은 맛’이 나는 글들. 그 옛날 광에서 빼먹던 곶감 맛 같기도 하고, 땡볕 아래 나눠 먹던 보리개떡 맛 같기도 하고, 시루에서 갓 꺼낸 쑥버무리 맛 같기도 한. 간간이 쐐기벌레에 쐬인 것처럼 쓰리고 아린 맛이 난다.
그는 지금 아무 연고도 없는 서해안 개펄 변산에 내려와 있다.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교사(敎師)로 거듭나기 위해 산살림과 들살림 갯살림을 두루 익히면서 삼년째 완전 무공해 농법을 ‘심고 있다’.
서투른 농사일을 하면서 맨 먼저 깨우친 것은 ‘자연에는 아무 것도 버릴 게 없다’는 교훈.
한번은 밭에 마늘을 심었는데 잡초가 움돋기 시작하더니 마늘밭인지 잡초밭인지 모를 지경이 됐다. 그냥 놓아두었다가는 농사를 망칠 것 같아 서둘러 풀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헌데, 그 풀들이 예사 잡초가 아니었다. 하나는 별꽃나물이고 또 하나는 광대나물. 알고보니 모두 맛난 반찬거리고 약초 아닌가.
아, 이 세상에 잡초는 없구나….
그래서 절로 밭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들을 거두어 이런저런 술도 담그고 효소로 익히면서 풀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한편으로 풀과 화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풀과 전쟁을 치르다보니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그렇게 농사꾼의 한 철이 저물어 간다.
그는 이태째 계절학교를 열고 있다. 아이들에게 바구니 엮기, 음식 만들기, 채소 기르기, 옷감에 천연물감 들이기, 뗏목을 엮어 계곡이나 바다에 띄우기 를 가르친다.
교실에서 구구단을 외는 것보다는 산이나 들판에 나가 새롭게 싹터 오르는 풀과 나무들을 바라보는 게 아이들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가끔씩 동네 조무래기들을 모아놓고 들려주는 이야기 한 토막.
단감서리 알아? 서리를 할 때는 몇가지 준비가 필요해.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머리엔 바가지를 써야해. 왜냐구? 한 여름 내내 볕에 타서 몸은 늘 구리빛으로 윤이 나지. 달빛만 받아도 번질번질, 별빛만 받아도 반짝반짝. 아, 바가지! 그건 또 이유가 있지. 홀랑 벗은 몸으로 감나무에 기어올라가 감을 찾는데 깜깜해서 보일리가 있나. 게다가 열매는 잎사귀에 가려 있거든. 그러니 바가지를 뒤집어 쓴 머리통을 이리저리 돌리고 흔들어 따각따각, 감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거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수업료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게 또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해 저문 산 그림자이거나, 여름 밤 별빛에 취해 하나 둘씩 지었다는.
‘한 해 먹고 입을 것/더도 덜도 말고/다시 몸 놀릴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다 주어버리라 하네./본디 내가 기른 것 아니니/내가 무슨 한 일 있다고…’
한마디 더 덧붙인다.
“사람이 후손을 가르침이 제 핏줄을 이어가는 길을 찾고자 함인데, 거저 베품이 이상해? 거미나 벌 원숭이 얼룩말이 어디 돈 받고 새끼를 돌보는가 말야….”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