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체격으로 풍채좋다는 평을 듣는 S정보통신의 안대리(31). 지난주초 여자친구 김모씨(28)가 졸라대 주말에 서울 T호텔 야외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내심 가슴을 짓누르는 시름. “나의 ‘배둘레햄’과 배가 접혔을 때 그려지는 ‘온전 전자’(全)를 보게 된다면….” 그날 저녁부터 안대리의 눈물겨운 노력은 시작됐다. 아파트주변 놀이터에서 줄넘기와 팔굽혀펴기 1시간, 잠들기 전 윗몸일으키기 50회씩.
막상 수영장에 가보니 ‘삼각팬티’수영복의 ‘송승헌형’이 득시글. 그는 김씨의 닦달에도 끝내 티셔츠를 벗지 않았다.
기혼남성도 마찬가지. 2주전 한강 둔치 잠원지구의 야외수영장을 찾은 K보험사 박과장(36). 비쩍 마른 체격이지만 몇년전부터 ‘복부비만’이 된 ‘ET체형’. 20대들의 몸을 슬슬 둘러보던 아내 정씨(32)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당신 배좀 집어넣어!”라고 무안을 주는 바람에 집에 돌아와 대판 부부싸움을 벌였다.
‘노출의 계절’ 여름. ‘햇볕’에 내놓기 위한 몸매관리는 이제 여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몇년새 남자를 보는 여성의 눈동자가 자유로워지면서 여름은 남자에게도 ‘스트레스의 계절’로 떠올랐다. 신세대여성은 더이상 남자를 ‘훔쳐’만 보지 않는다. S호텔 객실판촉부의 정모씨(25). “친구끼리 수영장에 갔다가 ‘잘빠진’ 남자가 지나가면 서로 못봐 난리죠. ‘야! 저 남자 차승원같아’ ‘끝내준다’ ‘좀 마른거 아냐’ 정도는 약과에요. 선글래스를 쓰고 보긴 하지만요.”
결혼미팅전문업체인 ㈜선우이벤트는 최근 20대 미혼여성 3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피서지에서 남자친구보다 몸매가 멋진 남자를 봤을 때 하는 생각은’이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2%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보고 즐긴다’고 답했다. ‘관심없다’ 12%, ‘사귀고 싶다’ 4%. 삼성에버랜드 캐리비언베이에서 젊은남녀 1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영복이 어울리는 남자연예인’에 1위 모델 차승원, 2위 탤런트 송승헌, 3위 가수 유승준. 하나같이 탄탄한 근육질과 남성미가 돋보이는 스타들.
패션의 흐름도 ‘배부른 남성’ ‘빈약한 남성’ 모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추세. 모델센터의 도신우대표. “90년대 중반부터 몸에 달라붙는 스타일이 남성패션을 주도하면서 패션모델도 밋밋하고 마른 스타일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다져진 체격이 득세하고 있다. 쫄티나 쫄바지를 입었을 때 ‘보디라인’에서 남성미나 건강미가 드러나야 한다.”
남자들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 캐리비언베이의 이해자 구명팀장(29·여)은 “수영장에 온 남자들이 짬짬히 화장실 뒷쪽에서 ‘푸시업’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몸매좋은 남자를 슬슬 피해다니는 남성이 많으며 그들의 옆을 지나갈 때 어깨와 배에 잔뜩 힘을 주기도 한다”고 묘사. 여름에 헬스클럽을 찾는 젊은 남성이 30∼40% 증가하고 지방흡인술을 시술하려고 성형외과를 찾는 30대초중반 남성이 느는 것도 이를 뒷받침.
자신있게 ‘벗지’ 못하는 남성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선우이벤트의 같은 조사에서 남성평가기준으로 ‘몸매’를 꼽은 여성은 12%로 지난해 8%보다 높아졌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미학과 박성봉강사. “영화 TV 광고에서 남성의 몸매를 적극적으로 상품화하면서 여성도 이를 대담하게 감상하고 느낌을 표현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남성이 시각으로 여성의 성적매력을 느끼는 반면 여성은 촉각과 청각이 우선하며 사회적 능력 등을 더 많이 고려하기 때문에 미적인 부분이 남성을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긴 힘들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