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새벽 수상스키」…『이보다 더 짜릿할 순 없다』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4분


“부타타타타”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 새벽. 서울 영동대교 밑 한강둔치. 모터보트의 굉음이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한강의 잠을 깨운다. 수영복위에 연초록빛 치마를 두른 젊은 여성이 시원스럽게 강물을 헤치며 지나간다. D화재 서울 대치동지점 김양일씨. 아침이면 넥타이차림으로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에 있는 수상스키장을 찾는다. 오전 6시인데도 속속 모여든 남녀 ‘새벽 수상스키족’은 20여명.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김씨는 준비운동을 하며 강물을 바라본다. 수상스키 5년째. 바람의 일렁임도, 유람선이 만들어 내는 파도도 없이 비단결같은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차분해진다. “오늘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처녀 강물’을 제일 먼저 갈라야지.”

시간이 없어 청평이나 팔당으로 가지 못하는 도시인에게 한강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새벽은 수상스키를 타기 가장 좋은 시간. 대부분 오전 6시에 와서 8시반까지 2,3번씩 탄 뒤 출근한다. 자영업자 간호사 변호사 보험사직원 등 직종도 다양.

점프 스타트! 스키를 신은 김씨가 ‘첨벙’하며 선착장에서 뛰어내리자 마자 보트가 무서운 속도로 끌고간다. 아차하는 순간, 물속에 그대로 처박힌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가. 세번씩이나 한강물을 들이킨 뒤에야 그는 물위에 떴다. 성수대교와 남산을 바라보며 시속 50㎞의 보트에 매달려 간다. 줄을 좌우로 잡아당겨 슬라롬(회전). 촤르르 쏟아지는 물살! 물보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쳐 일곱색깔 무지개가 떠오른다. 함박 벌어진 입으로는 시원한 공기가 한 움큼씩 빨려들어간다. 10분만에 한바퀴를 돌아온 김씨는 줄을 놓고도 한참을 미끄러지며 서서히 물에 내려앉는다. 술이 다깬 뒤의 개운함이 온몸에 전해온다.

2주일째 새벽마다 수상스키를 즐기고 있는 한의사 오모씨(34·서울 포이동). 처음엔 98㎏의 거구가 물위에 떠서 달린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13일째에야 한발로 타는데 성공했다. 하루하루 팔뚝에 힘이 늘고, 허벅지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새 허리벨트도 두칸이나 줄었다.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헬스클럽운동 조깅 수영과 달리 수상스키는 짜릿한 스릴을 즐기면서하는 레저스포츠. 운동량도 만만찮다. 거친 물살 위를 보트에 이끌려 갔다오면 팔뚝 다리 등 전신이 녹초가 된다. 수상스키 15분은 헬스클럽의 1시간 운동량. 숙달된 사람도 연이어 2,3번 이상 타는 것은 금물.

몸매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젊은 여성도 수상스키를 즐긴다. 전신을 두들겨대는 물보라 마사지는 탱탱한 피부를 만드는데 만점이라고. 2년째 수상스키를 타고 있는 장정아씨(29·의상 코디네이터)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자신감을 얻은 것이 더욱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수상스키를 한번 타는데 드는 비용은 1만5천원선. 동호회를 통해 더 싸게 즐길 수 있다. 서울 장안동에서 카오디오센터를 운영하는 이기일씨(30)는 지난해 동료 7명과 함께 모터보트 한척을 샀다. 매일 동호인 중 2사람이 교대로 기름을 2말(5만원)씩 사와 7명이 2,3번씩 수상스키를 즐기고 있다.

8시반이 되자 김치찌개를 먹거나 우유를 마신 수상스키족들은 샤워한 뒤 ‘출근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S건설 과장 허모씨(37).“아침에 수상스키를 탈 때면 일상의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게 돼요. 자칫 딴 생각하면 한강물의 플랑크톤을 한바가지씩 들이켜야 하기 때문이죠. 지난 5년간 몇드럼은 먹은 것 같은데 끄덕없는 것을 보니 한강물도 깨끗해진 편 아닙니까?”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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