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역 폭우]아내-딸 잃은 가장, 통한의 눈물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4분


대자연의 노호(怒號)는 무섭도록 가혹했다. 지리산 계곡 야영의 위험을 무시한 사람들을 ‘급류’로 채찍질했다. 그래도 다시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는 ‘만연히’ 텐트가 펼쳐진다.

3일 경남 산청군 대원사 계곡에서 넋을 잃은채 앉아 있는 김용하(金龍河·37·경남 마산시 산호동)씨. 그를 짓누르는 후회의 무게는 너무나 컸다.

“취사나 야영금지 지역에서 텐트를 친 우리 잘못이지요. 이런 비상시 대책을 마련해 두지 못한 관리사무소도 원망스럽고요.”

지난달 30일 고등학교 동창 2명과 휴가날짜를 맞춰 가족단위의 야영을 계획하고 대원사 계곡을 찾았던 김씨는 ‘취사 야영 금지’라고 씌어진 경고문을 무시한채 텐트를 쳤다.

“계곡 곳곳에 이미 20여개의 텐트가 있었어요. 다들 그렇듯이 형식적인 경고문에 불과할 거라는 생각이 큰 ‘화’를 불러왔습니다.”

김씨는 계곡물이 가족들을 휩쓸어 가기 30분전 텐트 주위에 배수로를 파고 계곡물의 수위를 점검한 뒤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피하라’는 주변 야영객의 외침을 듣고 텐트를 나왔을 때 이미 계곡물이 봇물 터지듯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계곡물이 넘치던 시간, 물이 차오르면 경고음을 내게 돼 있던 경보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물빠진 계곡에 넋을 잃고 널부러졌던 김씨는 부인과 딸 아들 등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떠내려간 지 1시간 반이 지나서야 경고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밤새 가족을 찾아 계곡을 헤메던 김씨는 2일 오전 대원사 앞 주차장에서 딸 혜림양(7)을 발견했으나 딸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함께 ‘수마(水魔)’에 휩쓸려간 부인과 5세 된 아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함께 왔던 고교 동창 정모씨(37)일가족 4명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주변 사람들이 일가친척으로 착각할 정도로 절친했던 동창생 3가족 12명중 5명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김씨는 “내가 경고문을 따랐거나 관리사무소가 원칙대로 과태료를 물리고 억지로라도 불법 야영객들을 몰아 냈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3일 오후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한 대원사 계곡 주변의 야영지에는 다시 피서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부 야영객들의 경우 물이 빠진 자리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벌써 생사가 엇갈린 자리임을 잊고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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