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作 「말탄 자는 지나가다」 16년만에 햇빛

  • 입력 1998년 8월 27일 18시 54분


최근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를 받아든 소설가 한수산(52)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의 중편 ‘말 탄 자는 지나가다’가 탈고 후 16년만에 ‘세계의 문학’에 게재돼 햇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말 탄 자…’가 유난히 오랜 산고를 거쳐야 했던 이유는 ‘시대적 상황’때문.

“82년 봄 첫 탈고된 소설을 보고 당시 ‘세계의 문학’ 편집진이 게재불가 결정을 내렸다. 소설내용 중 도강장면이 5·16쿠데타를 연상시키는데다 혁명군들이 자의적으로 계급을 정한다는 설정이 신군부의 비위를 건드려 화를 부를 게 뻔하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말 탄 자…’는 신군부에 대한 그의 문학적 저항이었다. 81년 봄 그는 당시 신문 연재중이던 소설의 내용이 군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보안사로 끌려갔다. 이후 그에게 절필 일본행 등의 고문 후유증을 남긴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

그러나 5공 치하의 어떤 문학지도 ‘말 탄 자…’를 게재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곳저곳 출판사를 떠돌던 원고는 수년 후 그의 동의없이 한 무크지에 4분의 1 분량 정도만 가위질 당한 채 실리는 수모까지 겪었다.

“내가 죽은 뒤에 미발표 유고로 발견되도록 그냥 던져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이제는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말 탄 자…’에서 말 위의 인간(馬上人)들은 지배계급인 지상인(地上人)의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봉기하지만 혁명은 잠시의 성공 후 무력화된다. 혁명 후 죽음이 사라져버렸기 때문.

처형대의 반동분자 뿐만이 아니라 도살장의 소와 닭조차 죽지 않아 민중들이 굶주림에 시달리자 혁명의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

결국 혁명군들은 “정권의 교체도 또 다른 죽음과 탄생의 자리다. 죽음을 찾아와야 한다. 종말을 데려와야 우리의 혁명도 완성된다”며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영구집권의 욕망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의 군사쿠데타. 지금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끝없는 권력욕을 향해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끝이 있음으로써 모든 것은 완성된다. 노래도, 춤도, 사랑도, 그리고 혁명까지도.’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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