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산문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 입력 1998년 8월 31일 19시 24분


‘나는 한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았다. 얼음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더럽게 눈물겨운 겨울이었다. 얼음밥은 도저히 수저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망치와 못으로 깨뜨린 다음 으적으적 씹어먹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뿐만이 아니라 내장까지도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파격과 기행(奇行)의 작가 이외수(52). 젊은 날, 스스로도 어쩌지 못할 광기(狂氣)의 칼날에 베여 상처받고 피흘려온 작가. 그런 그의 ‘글 눈’을 트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다. 눈물겹다.

세 솥째 얼음밥이 비어 갈 무렵…, 그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고 한다. 겨울 하늘을 바라보는 굴참나무의 소망이 무엇인지, 폭설을 뒤집어 쓴 산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한지, 얼음 밑을 흐르는 개울물이 왜 그리 밤새 뒤척이는지….그리고는 미친듯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산문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동문선). 그 ‘들개’처럼 외롭고 거친 영혼이 토해내는 지난날들은 ‘데일 듯’ 뜨겁기만 하다. 글을 쓸 때는 머리를 삭발하고 철문을 닫아건채 죄수처럼 지낸다는 ‘괴기스런’ 문학혼과의 만남은 두렵기조차 하다.

허나, 글은 ‘봉두난발 허깨비’ 같은 그의 행색만큼이나 편안하고 수수하다. 곳곳에서 웃음이 배어난다.

그를 키워온 것은 ‘팔할’이 술과 가난이었다.

생라면 하나로 일주일을 때우던 시절. 알맹이를 분질러 먹으면서 나흘을 버티고 스프를 물에 타 마시면서 사흘을 견뎠다. 겨울 밤에는 홍등가를 찾아가 불동냥을 했다. 연탄불 앞에 모여 앉은 아가씨들 사이에 끼어들어 ‘고자’ 행세를 했다.

“아저씨,나하고 오입 한 번 할까?” “공주님, 저는 빈한(貧寒)의 칼날에 물건을 거세당한지 오래랍니다.”

소문이 나돌았다. “저 아저씨 고자래”. “어머나, 왜 그렇게 되었대?” “빈한이라는 사람이 칼로 잘랐대나봐….”

그런 그에게 술은 절망의 친구였고 고통의 연인이었다.

‘무박삼일’을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취하면 개집이나 쓰레기통에서 잠을 잤다. 한 달 동안 마신 술병이 담벼락과 같은 높이로 쌓이기 일쑤였다. 아, 술이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도 이제 어언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술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 지겹던 생활의 궁기와 함께. 술과 가난이 떠나간 그에게선 웬지모를 쓸쓸함이 감돈다.

그의 말.

‘이제, 모든 것들은 마음속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다. 소설 하나만으로도 버겁고 눈물겨운 인생. 어느 새 나는 길섶에 피어 있는 풀꽃 한 송이를 보아도 절로 뼛속이 투명해지는 나이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동문선 펴냄)

〈이기우 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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