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목욕탕 한증막안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선현경씨(29·주부)는 뜻밖의 권유에 어리둥절. 도시락 반찬통만한 플래스틱통에 든 죽염을 연신 온몸에 문질러대던 40대 중반의 아주머니. 혼자 마사지하는게 멋쩍었던지 불쑥 말을 걸어온 것.
선씨는 “여탕에 가면 몸에 바를 수 없는 게 세상에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어요.모두들 자기만의 ‘레시피’가 있죠. 온갖 재료로 발랐다 씻어내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환경오염이 걱정되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당근 마요네즈 요구르트 계란 시금치 우유 쑥 오이 꿀 감자 죽염 청주 바나나 살구씨 사과 밀가루…. 샐러드 재료가 아니다. 모두가 여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르기 재료들.
여자목욕탕은 마사지천국. 아름답고 젊은 피부를 가꾸는데 좋다는 온갖 재료들이 등장한다. 피부에 좋다면 뭐든 바르려는 여성의 심리는 정력에 좋다면 뭐든 먹어대는 남성의 심리와 묘한 공통점이 있다.최근에는 온갖 먹을거리가 바르기재료로 등장. ㈜태평양 홍보실의 김태경과장은 “90년대 중반 천연식품붐을 타고 피부관리 재료에도 천연식품의 바람이 불었다”고 설명.
▼ 먹어서 좋은 것은 발라도 좋다? ▼
최광호 피부과의원장은 “먹어서 문제가 없는 것은 대부분 발라도 탈이 나진 않는다”고 말한다. 에뛰드화장품의 미용연구팀 노석지대리도 “역사적으로 화장품의 기본재료는 음식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화장품은 유효성분을 추출해 농축하고 부작용이 있는 성분은 빼 효과를 높인 것”이라고 설명.
하지만 여성의 기대처럼 피부가 영양분을 쏙쏙 흡수해 윤택해질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피부각질층에 단기간 잔류할 수는 있지만 진피층까지 침투하는 영양물질은 극히 제한적이다. 최원장은 “피부세포에 전달되는 양으로 본다면 천연재료를 바르기보다 같은 양을 씹어 섭취하는 편이 수십배 나을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문제는 부작용. 살구씨 오이 등으로 마사지 하다가 알레르기나 잔류농약 때문에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 바르기의 효과 ▼
온갖 재료를 바르는 사람들은 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주부 안미영씨(35)는 “우유나 요구르트로 마사지하고 나면 확실히 피부가 매끄러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고.
소피텔앰배서더호텔 피부관리센터의 김남옥씨(피부관리사)는 “마사지재료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세정 보습 표백의 세가지”라고 말한다. 우유 요구르트 계란 꿀 등은 보습효과, 오이 밀가루 수세미 등은 표백효과, 청주 등은 세정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은 각질층에 잠시 머무는 정도이며 여러 재료를 발랐다 씻어내기를 반복하면 효과는 더욱 미미해진다고.
▼ 피부가 고우면 마음도 곱다? ▼
그렇다면 바르기의 효과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피부에 대한 애정과 관심, 즉 심리상태가 피부미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김씨는 “피부가 고우면 대부분 마음씨도 곱다. 편안한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야 피부가 고와지기 때문이다”고 주장.
박진생 정신과의원장도 같은 주장. “여성의 피부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까닭 모를 피부염증 가운데 상당수는 심적 요인 때문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 마사지를 통해 자기를 가꿨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뇌하수체에 작용해 부신피질호르몬과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정성껏 마사지한 여성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여성이 아름다워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