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극단 학전 「의형제」

  • 입력 1998년 9월 25일 19시 21분


뮤지컬 ‘의형제’(극단 학전)무대에서는 공간이고 사람이고 허투루 쓰이는 것이 없다. 1백68석 규모의 소극장. 반주자 여섯명 앉을 자리가 부족해 2층으로 나뉜 무대 위쪽에 두대의 신시사이저와 색소폰, 아래층 무대 뒤편에 드럼과 두대의 기타 주자들이 나눠 앉았다.

주인공 무남역의 권형준을 빼고는 아홉명의 배우들도 일인다역(一人多役)을 감수한다. 적게는 둘, 많게는 열개 역까지 맡았다.

‘의형제’ 무대의 이런 빡빡함은 그러나 ‘궁색’이 아닌 ‘알뜰’로 비친다. 뮤지컬이 갖춰야 할 ‘기본’에서 덜어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다 거짓말이었죠? 그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첫 노래의 가사처럼 다분히 신파. 한국전쟁 직후 가난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유복자 쌍동이 형제. 한 사람이 부잣집으로 입양돼 운명이 엇갈린 뒤 결국 서로를 죽이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이 거짓말을 믿게 만드는 것은 톱니바퀴처럼 팀워크를 이룬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TV에 나오는 스타는 한 사람도 없지만 연기력은 고르게 안정돼 있다. 객석과 거리가 있는 대형무대와 달리 코앞에 앉아있는 관객들에게는 표정연기, 노래, 춤 어느 것하나 얼렁뚱땅 눈속임 귀속임으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뮤지컬들조차 막대한 비용부담의 이유를 들어 반주를 녹음으로 대체하지만 학전은 좁은 공간, 빠듯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라이브 반주를 고수한다. ‘작은’뮤지컬 ‘의형제’의 공연방식은 막대한 제작비, 대형극장, 화려한 무대가 정석(定石)인양 여겨지는 한국뮤지컬 풍토를 되돌아보게 한다. 겉치레만 요란할 뿐 내로라하는 대극장을 빌려놓고도 리허설 한번 제대로 못한 채 공연을 시작하는 날림제작, 스타 출연자 한 두명의 얼굴에 흥행성패를 거는 것이 과연 뮤지컬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일까.

공연은 12월말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학전 그린소극장. 평일 오후7시반(월요일 쉼) 토 오후4시 7시반 일, 공휴일 오후3시 7시. 02―763―8233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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