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파고드는 새벽 추위에 무방비로 몸을 내맡긴 채 1백여명의 노숙자가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얇은 옷만 걸친 채 잔디밭에 누워 오들오들 떠는 사람, 신문지만 달랑 덮고 자는 사람, 땅의 한기(寒氣)를 피해 벤치에 누운 사람…. 주택가에 버려진 담요라도 주워온 사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릎이 턱에 닿을 듯이 새우처럼 몸을 움츠린 자세다. 간간이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진다. 주변에는 잠들기 전까지 이들의 몸을 데우던 술병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노숙자에게 ‘겨울’이 찾아왔다.
비슷한 시간 종묘공원에도 40여명이 술병을 베개삼아 잔디밭이나 벤치에서 잠자고 있었다. 조금 일찍 서두르면 따뜻한 바람이 올라오는 지하주차장 환풍기 옆을 차지할 수 있다. 심지어 찬바람이 소름을 돋게 하는 남산공원에도 5,6명의 노숙자가 보였다.
이들이 모인 곳에는 가래 끓는 소리와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일교차가 심해지면서 감기환자가 급증한 탓이다.
비가 내린 30일 새벽.
공원의 노숙자들이 비를 피해 밀려든 탓에 서울역 영등포역 종로3가역 등 서울시내 주요 역에는 평소보다 20∼50명이 더 늘었다. 서울역 역사 처마 밑에도 1백여명이 돗자리와 옷가지 등으로 허술하게 몸을 가린 채 일렬로 누워 잠자고 있었다.
3백여명이 신문지 등을 깔고 통로 양쪽에 누워 자는 서울역 지하도는 바깥보다는 추위가 덜했지만 바닥에 몸을 누이면 콘크리트의 냉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연세대의대 황수관(黃樹寬)교수는 “새벽 기온이 15도 정도까지 내려가는 요즘 영양 부족으로 허약해진 노숙자들이 술을 마시고 밖에서 자면 혈관이 확장된 상태에서 체열을 빼앗겨 숨질 수도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시설의 수용 규모는 9백명선을 넘지 않아 최소 2천5백명으로 추산되는 노숙자를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윤종구·선대인·박윤철기자〉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