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천의 ‘힘’전을 보면서 이런 류의 순수미술가들의 콤플렉스에 대해 또한번 생각하게 됐다. 윤동천이 영화감독이라면 그는 힘에 관한 이미지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부각시킬수 있었을까. 그때의 힘에 관한 표현들과 미술에서 지금과 같은 표현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 등에 관한 생각이었다.
그 둘의 차이가 똑같은 표현이되 미술적 표현이 좀더 제한적이고 그래서 갑갑한 표현일 뿐이라면(미술이 영화보다는 표현영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얘기가 ‘힘’에 관한 것인 윤동천의 미술가로서의 현재의 신세는 사실상 갑갑하고 안타까운 동정의 대상일뿐일 것이다.
이는 단지 그가 미대교수이고 화가라는 이유로 미술이라는 매체를 사용해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한다는 사회적이면서도 자기 억압적인 관행에의 복종의 결과로서의 전시를 그가 하고 있을 뿐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동천의 전시가 보여주고 있는 내용은 사실 바로 이런 생각들에 관한 것인 것 같다. 그의 힘에 관한 정치적 사회적 해석은 80년대에 비해 특별히 새로운 점은 없지만 힘에 관해 말하는 방식은 90년대적이다. 윤동천이 힘에 관해 말하는 방식이 90년대적이라는 것은 그가 90년대 문화적 힘이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산업에 있다는 점을 의식하면서 그런 대세가운데서 순수미술가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여러가지로 모색하고 있음을 이번 작품전에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민미술관에서 기획한 ‘이시대 이작가’전의 올해의 작가로 초대된 윤동천의 작품세계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이시대 작가들에게 공통된 이와같은 고민이다.
이런 상황가운데서 그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보고 있다. ‘나는 그림의 힘을 믿는다. 그것은 비록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작용하지만 생각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지만 영화도 생각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순수미술을 존재케할 것인가. 아마도 윤동천의 작품들이 암암리에 포함하고 있는 바처럼 연속되지 않는 단편적인 심미성, 파편적인 이미지 기호로서의 소통방식은 영화에서보다는 미술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전시는 이런 해답에의 길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17일까지 일민미술관(02―721―7776)
강성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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