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거나 이순신 원균 등에 관한 소개나 지식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도 김탁환의 소설 ‘불멸’은 소름끼치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움켜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원인은 정확하게 조사된 사료들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픽션 속으로 녹아들게 한 소설적인 구조일 것이다.
서로 전공(戰攻)을 다투며 거듭하는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이 비로소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였고, 간자(間者)를 풀어 세자(광해군)의 동태와 언동을 감시하면서 특히 장수들의 전공까지를 담보로 하여 자신을 향한 반역의 싹을 도려내는 선조의 집요한 제왕학도 이 소설을 즐겁게 읽게하는 새 패턴이다.
또 불바다와도 같은 전쟁 속에서 민중과 더불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예술가들의 삶도 눈물겹게 그렸다. 명필 석봉 한호, 영원한 혁명가인 ‘홍길동전’의 허균, 그의 불우했던 스승인 손곡 이달, 그리고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과 그의 벗 최중화 등 실존인물들의 우정어린 역정은 끈적인 감동을 동반하게 한다.
‘불멸’은 4백년전의 이야기인데도 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은 섬뜩하리만큼 오늘의 과녁을 뚫는다. 이를테면 오늘 우리가 참담하게 체험하는 지역 차별과 지역감정의 문제까지도 현실감 넘치게 그려놓고 있다.
‘불멸’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역사소설을 통렬하게 반성하게 한다.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것은 갓 서른의 신인작가가 엄청나게 방대한 사료를 그토록 정교하게 펼쳐놓으면서 죽어 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을 살아서 숨쉬게 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신봉승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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