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꼭 70년 전인 1909년 러시아 하얼빈역. 천황 아래 제1인자로서 조선합병과 아시아침탈을 지휘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가슴을 관통한 육혈포의 총성. 혈혈단신 저격에 나선 사나이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두손을 높이 치켜들고 그가 러시아말로 외친 것은 “우라 카레이(조선 만세)!우라 카레이!”
대한의병 참모중장 안중근의사(1879∼1910). 일본군의 감옥에 끌려가서도 “나는 대한의 군인이다. 살인흉악범이 아닌 포로로서 내게 정당한 예우를 갖춰주기 바란다”고 당당하게 맞섰던 대한남아.
서울시립극단이 건국5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올리는 서사극 ‘대한국인 안중근’(극본 김의경·연출 표재순)은 그의 의지 분노 고뇌 결단을 숨가쁘게 돌아가던 당시 정세와 맞물려 그려낸다. 동아일보 주최.
작가 김의경은 안중근의사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하얼빈역에서 이름없는 한 조선 사나이와 일본제국의 우두머리가 운명적으로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엇갈려 교차하는 기차여행에 담았다.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중국 다롄(大連)을 떠나 러시아땅으로 향하는 추밀원의장 이토와 친구에게 뺏다시피한 돈으로 동지 우덕순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남루한 여행객차림으로 내려선 안중근의 극명한 대비.
한사람은 ‘정복자’로서 또 한사람은 그 정복으로 인해 세상에 흘려진 무고한 피를 증명하기 위한 ‘정의의 전쟁’으로 나선 이 두개의 길은 하얼빈의 총성으로 폭발한다.
하얼빈의거와 하얼빈영사관에서의 취조, 뤼순(旅順)고등법원의 재판, 뤼순감옥에서의 면회등 거사 당시에 초점을 둔 극은 역사를 증언하는 길고 냉정한 대사들을 통해 관객의 정서보다는 이성에 호소한다.
배우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별로 남겨두지 않았지만 안중근역의 김갑수, 이토 히로부미역의 원로배우 장민호, 안중근 모친역의 박정자등은 탁월한 대사소화로 무대를 장악한다.
“암살에 이르기까지 안의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심적인 경로를 더듬어봅니다. 일국의 거두를 죽이는 일에 두려움이나 고뇌는 없었을까. 그를 떨치기 위해 더 강력하게 자신을 밀고 나가는 내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려 합니다.”(김갑수)
공연은 30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평일 오후7시반 토 오후3시, 7시반 일 오후3시. 02―399―1645,7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