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런가. ‘비너스’(!)의 속옷을 입은 여자와 ‘나이키’(!) 신발을 신은 남자가 ‘올림픽’(!)대로를 질주하고 있는 지금, 인간과 우주의 완전한 조화와 일치를 꿈꾸었던 신화는 정녕 설 자리가 없는가.
정신분석학자 융의 말. ‘신화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외적인 인물이며, 신화를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스며있는 조상의 삶,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리고 과거의 시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신화는 인류의 삶의 뿌리다. 인류의 역사는 그 뿌리에서 자라왔다. 그것은 문명의 시작을 설명해주는 고대의 암호(暗號)이며, 우주와 인생의 내밀한 의미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이야기다.
그런데도 신화는 왜 선뜻 들춰지지 않는 것일까.세월의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쓴 낡은 언어와 켸켸묵은 해석이 혹여, 신화에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았는지…. 현암사에서 펴낸 ‘신 그리스 신화’(전3권)와 ‘이야기 세계의 신화’(푸른숲)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오스트리아 작가 미하엘 쾰마이어의 ‘신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의 근간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내용을 손질하고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지상에서 인간이 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그리스 신화에 낀 3천년의 먼지를 털어냈다.
더할 수 없이 밝고 즐거운 요소와 무서울 정도로 잔혹한 요소, 죽음과 섹슈얼리티 등등…, 극단적으로 상이한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남국의 태양 아래 이글이글 타오른다. 작품 전체가 ‘인간 영혼의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독자들을 빨아들인다.유혜자 옮김.
1870년에 출생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신화연구가 에이미 크루즈. 그의 ‘이야기 세계의 신화’는 그리스와 로마, 북유럽, 아메리카 인디언, 이집트 인도 일본 등등 수세기에 걸쳐 창조된 세계각국의 신화들을 한데 아우른다.
험난한 기후 속에서 남성적인 힘을 경배했던 북유럽인들. 그들은 거인 아에시르같은 전쟁의 신을 경배했다. 반면 천혜의 자연조건을 누렸던 그리스 로마인들에게 신은 외려, 욕망에 시달리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로 비쳐졌다. 이에 비해 태양에 열광적으로 집착했던 이집트인들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강력한 신 오시리스를 떠받들었다.
인도 신화의 중심 주제는 창조와 파괴 사이의 긴장. 끝없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찾아나가고, 그 우주가 또 다시 혼란으로 빠져든다. 북미 인디언 신화에서는 어린이처럼 순진하고 우매한 신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우스꽝스럽고 엉뚱하기만 한 신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배경화 편역.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