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감독은 “아직까지 결점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란다. 그가 말하는 결점은 관객이 거의 눈치채기 힘든 색감같은 것들. “관객이 의식적으로 알아보진 못해도 무의식적인 느낌은 미세한 차이에 의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 그가 후반 작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총 제작기간 11년, 대체로 서너번에 그치는 장면당 촬영회수가 20회, 보통 두달걸리는 후반작업에 공들인 시간만도 아홉달…. 어지간한 ‘독종’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그는 “이걸 지나치다고 한다면 한국영화에는 희망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기존의 제작 환경과 타협하지 않고 리얼리티와 마음속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온갖 신기록을 세워가며 구도하듯 엄숙한 태도로 영화를 만든 그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영화 작가’다.
21일 개봉할 ‘아름다운 시절’에는 6·25직후 피폐한 세상에서 커가는 아이의 현재진행형 시점과 40여년이 지나 아버지 세대가 겪었음직한 경험을 돌아보는 감독의 시점이 교차한다.
낡은 사진첩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응시하고 회상하는 감독의 시선은 고정된 카메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듯한 촬영, 빛바랜 듯 아련한 색감으로 표현된다.
전쟁과 극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얼룩진, 결코 ‘아름답지 않은 시절’이지만 이감독은 참혹한 사건들을 야단스럽게 되살려내지 않았다. 오히려 절제된 표현과 정교한 화면구성, 빼어난 영상미로 복원해낸 일상에 대한 기억은 실낱같은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슴 가득 고이는 슬픔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가 갖지 못한 인간적 아름다움을 갖춘 아버지 세대의 삶을 반추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감독. 시를 전공했지만 “삶의 총체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때문에 영화를 선택”했고 94년 영화사 백두대간을 차려 할리우드 영화에 점령되다시피 한 국내에 예술영화만을 엄선해 수입, 수용의 폭을 넓혀왔다.
다음 영화로 이산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날이 오면(가제)’을 구상중인 그는 아직까지 영화가 예술임을 믿는다. “영화를 통해 삶과 인간, 사회와 역사를 잘 들여다보려고 애쓰면서 작가와 관객이 함께 성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 진지한 감독에게 이제 관객이 대답할 차례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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