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인형은 소년의 놀이방에서 ‘진짜 토끼’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 그 때까지는 무엇을 본떠 자기를 만들었는지도 몰랐지. 토끼 인형은 나이 많은 말 인형과 진짜 토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진짜가 뭐예요? 나도 진짜가 될 수 있나요?”“그렇고 말고. 누군가 널 장난감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주아주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해주면, 너도 진짜가 될 수 있단다.”
“진짜가 되면 아파요?”
“아플 수도 있지. 하지만 진짜가 되면 아픈 것도 참을 수 있겠지?” “태엽 감을 때처럼 단숨에 진짜가 되요? 아니면 조금씩 조금씩 변하나요?”
“금세 변할 수는 없단다. 오래오래 기다려야 해. 쉬 깨지거나, 너무 날카롭거나, 잘못 만지면 망가지는 장난감은 진짜가 될 수 없어….”
비룡소에서 펴낸 영국 작가 마저리 윌리엄스의 ‘인형의 꿈’.
진짜 토끼가 되고 싶은 토끼 인형의 꿈을 통해 어린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성장(成長)의 긴 터널 속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목판 초상화의 대가였던 윌리엄 니클슨의 삽화가 목판 채색화 특유의 바랜 듯한 색조 속에서 따뜻한 모성애를 은은하게 전해준다.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에 배우 메릴 스트립의 나레이션이 함께 담긴 CD도 함께 선보였다. 초등학교 3,4학년 이상. 6,000원.
…, 유모가 소년에게 토끼 인형을 가져다주면서 투덜거렸어. “이까짓 구닥다리 토끼 인형이 뭐가 좋다고 야단이니!” 그러자 소년은 침대에서 발딱 몸을 일으키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렸어.
“어서 줘요!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이건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토끼예요!”
토끼 인형이 얼마나 기뻤겠어? 말 인형 말대로라면 이제 진짜가 됐으니 말이야. ‘마법이 일어난거야. 난 이제 인형이 아냐. 진짜 토끼라고! 조금 전에 소년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잖아.’
그날 밤, 토끼 인형은 너무 좋아서 한숨도 못잤어. 그 조그만 톱밥 심장은 넘치는 사랑으로 터질 것 같았지. 윤기가 없어진 단추 눈에서도 영리하고 아름다운 빛이 흘렀어….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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