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담그기]시댁-친정 도와준 사람 「뿌듯」

  • 입력 1998년 12월 7일 19시 52분


‘따르릉’

“여보세요.”

“큰 애기냐.”

“네, 어머님. 별 일 없으시죠?”

“일은…. 다름이 아니고, 이번 주말에 김장하고 너희 먹을 것 싸 놓을 테니까 일요일에 와서 가져가렴.” 시어머니의 ‘제안’을 받은 김모씨(35·서울 송파구 방이동)는 잠깐 생각을 한 뒤 토요일에 가서 김장을 함께 담그기로 결정.

‘따르릉’

“여보세요.”

“작은 애기냐.”

“네, 어머님. 별 일 없으시죠?”

“일은…, 다름이 아니고….” 작은 며느리 박모씨(32·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형님이 있으니까’, 그날 기분 봐서 결정하기로 결심.

김장하러 시댁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노인 혼자서 힘드실 텐데 가야지. 또 옆에서 도와드리고 받아오는 김치로 가족이 한 겨울 날 수 있잖아?’ ‘아니야, 내가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 몇포기 담그지도 않잖아. 김치야 친정에서 갖다 먹으면 되지.’ 김씨와 박씨의 경우….

‘딩동’

“이게 누구야. 왜 왔어? 내일 와서 가져가라니까. 몇 포기 안 담가서 일도 많지 않은데.”

토요일 오전 9시경. 시댁인 서울 상도동에 도착한 김씨는 이날 오후4시까지 절여 놓은 배추를 씻고, 김치속을 만들어 넣은 뒤 그릇에 담는 일을 했다. 속 넣는 일에만 5시간. 저녁 때 집에 돌아와 “작은애한테는 아무 말 말아라”며 시어머니가 싸준 김장김치를 김치 전용 냉장고에 담았다.

박씨는 이날 오전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서 친정에 전화했다. “엄마, 난데….” “얘는, 가서 도와드리지 그랬니. 김장이 어디 보통 일이야? 꼬박 이틀은 배추랑 씨름을 해야 하는데, 어렸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끼리 돌아가면서 김장 품앗이 하는 거 못봤어?” “우리는 김치 얼마 먹지도 않고, 또 형님네도 있고 딸도 있는데, 뭘.” “딸이 일을 하니? 이번에 너도 안 왔잖아.” “너무 그러지 말아요. 그래서 지난 주에 김장비용으로 얼마 드렸단 말야.” “그 놈의 돈.”

“김치 좀 주랴?” 친정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김씨. “아니에요. 시댁에서 김장김치를 많이 주셔서 올 겨울은 괜찮을 것 같아.” “그것 갖고 돼?” “시어머니가 계속 갖다 주시니까요.” “그래도 가져다 맛이라도 보아라.” 김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했다. ‘모자란다고 하는 건데….’

최근 시어머니를 도와 김장을 한 김연진씨(35·서울 동작구 본동). “김장은 남자들만 신나는 추석이나 설날과 달리 여자들이 즐거운 ‘명절’이다. 몇 시간씩 앉아 수다를 떠는 즐거움은 이 때만 맛볼 수 있다.” 김정은씨(31·서울 성북구 돈암동). “시댁 친정을 막론하고 김장을 도와 드리지 않으면 나중에 김치를 달라고 손을 내밀 때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부득이 김장을 함께 못할 경우 저녁 때라도 고기를 사 들고 찾아 뵙거나 ‘촌지’를 드려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지도 못하면 겨울이 더 추워진다.”

즐겁기도 귀찮기도 하면서 함께 하지 않으면 왠지 꺼림칙한 김장의 가치는? 친정에서 어머니 동생과 최근 김장을 한 이선희씨(39·서울 서초구 잠원동). “김장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일당 4만원, 월급으로는 1백20만원 정도를 요구하겠다.” ‘4만원’을 그냥 줄테니 김장하러 친정이나 시댁에 가지 말라고 한다면? 이씨의 대답. “4,5시간 둘러앉아 애들 자라는 얘기, 남편과 사는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의 따뜻함. 오랜만에 느끼는 어머니의 정, 가지 않았을 때의 ‘후환’…. 1천억원이라면 고려는 해 보겠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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