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편지’보다 일주일 앞서 1백만 기록을 깼다. ‘편지’가 서울에서 1백일 상영되는 동안 공식 집계된 관객 수가 82만. ‘약속’은 3주만에 서울 관객을 47만명이나 모았다. ‘편지’의 흥행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다. 둘다 영화사 신씨네가 만든 멜로물이다.도대체 왜 그렇게 사람이 몰리는 걸까.
“이 영화엔 사랑과 정의(正義)가 있다.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환상 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최고의 덕목이 대중을 사로잡는다.”
평론가 강한섭(서울예전교수)의 분석이다.
조직폭력단 두목(박신양 분)은 깡패답지 않은 순수함으로 여자(전도연)에게 다가간다. 사랑 때문에 울부짖는 남자가 여성관객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게다가 남성관객까지 울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비록 건달세계의 정의이기는 해도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싸나이’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부는 IMF시대, 그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 중견간부도 “남자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며 벌개진 눈을 꿈벅거린다. ‘높은 분’을 모시고 온 떡대같은 경호원 두명이 엉엉 울고 가더라는 얘기도 있다.
박신양 전도연 두 배우가 부딪쳐 일으키는 스파크도 관객을 끌어당긴다.
박신양에게는 러시아 유학파라는 지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러면서도 꺼벙하게 웃는 모습으로 사람을 방심시킨다. 치밀함과 어눌함, 칼날같은 눈빛과 어처구니없는 빈틈이 공존해 객석을 쥐락펴락한다.
전도연의 짱구이마엔 아이같은 천진난만함과 도토리같은 단호함,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능히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지킴직한 순정파의 고집이 담겨있다. 처음엔 능동적으로 남자를 이끌지만 동백아가씨처럼 하염없이 남자를 기다리다가 종국에는 죽으러가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가족을 영속화하고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멜로드라마적 전통을 충실히 답습한다.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점도 역설적으로 관객유인에 한몫하고 있다. 사람들은 매끄럽고 세련된 영화보다 친구처럼 ‘만만한’ 영화에 더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가 “‘약속’의 성공은 한국영화 발전 측면에서는 일종의 퇴행”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