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형이 병석에 누워 대신 시를 써 응모한다는 청년,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남편이 평소 써놓았던 시를 발견해 그걸 그대로 보내온 여성 등등….
IMF시대의 경제난 탓이었을까. 아니면 궁핍한 시대 궁핍한 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손바닥만한 간이세금계산서 뒷면에 시를 적어 보낸 사람도 있었다.
심사위원을 못믿어서인지 자신의 응모작에 대한 해설과 창작 동기 등을 함께 보낸 경우도 있고 심사위원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잘 봐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한 경우도 있었다.
잡지를 통해 등단했다는 한 중년 남성은 자신의 사진과 데뷔작품 평론가의 해설을 첨부해 심사위원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시를 그대로 응모한 여성도 있었다.
장르별 기준 원고량을 지키지 못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2백자 원고지 70매내외의 단편소설에 40매, 1백50매, 1백80매짜리 소설을 보낸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 2백50∼3백매의 중편소설 부문에 6백매, 8백매짜리의 장편을 보내온 응모자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응모자들을 가슴 설레게 한 경우도 있었다.
E메일을 통한 응모 원고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을 경우, 그 응모자들에게 다시 원고를 받기 위해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들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담당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 드디어 당선이 됐구나’라며 심호흡을 가다듬지나 않았는지. 하지만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곤 “원고가 안 들어왔습니다”라는 말이었으니….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