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은 1914년 국내에서 네번째로 도쿄(東京)유학길에 오른 신여성이며 여성으로는 최초로 유학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도쿄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해 한국 근대미술의 초석을 세웠다. 1919년 독립만세사건에 가담, 옥고를 치른 후에는 소설 논단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혜석여사를 더 유명하게 했던 것은 유별났던 연애 결혼 이혼 등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웠던 자유분방함.
변호사였던 김우영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요절한 약혼자의 무덤에 묘비를 세우게 했던 것, 그와 1927년 2년간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독립선언 33인중 한 사람인 최린(崔麟)과의 연애, 또 그 이야기가 1930년 서울에 전해져 장안의 화제가 됐고 그로 인해 이혼한 것 등이다.
기념사업회는 수원농조예식장∼효원공원 구간을 ‘나혜석 문화의 거리’로 이름 짓고 내년 4월 여기에 나혜석 동상도 세울 계획이다. 또 수원시 신풍동 생가터에는 표석도 설치할 예정. 또 여성작가초대전과 자료전, 기념심포지엄 등을 통해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살펴보고 재평가할 계획이다.
기념사업회 이선열(李善烈·수원고교사)상무이사는 “근대 여성사와 문학사에서 나혜석의 용기와 열정은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박종희기자〉parkhek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