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중립을 지켜왔던 경찰이 이날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총무원 건물을 점거하고 있던 정화회의측 승려들을 끌어낸 것은 더이상 방관할 경우 공권력의 권위가 무너지고 수습할수 없는 사태가 올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법원이 11일 퇴거 판결을 내렸지만 정화회의측은 “세속법의 잣대로 종단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며 거부했고 법원 집행관들이 두차례나 조계사 입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당국은 유혈사태 발생과 ‘종교탄압’이라는 비난 등을 우려해 경찰투입을 망설여왔으나 정화회의측이 대구 동화사를 강제로 접수하는 등 사태가 해결 기미는 커녕 지방사찰로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자 더이상 개입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이날 새벽을 ‘D데이’로 결정한 것은 법원 판결 집행 최종 시한이 26일이고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시기적으로 경찰 투입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찰력의 도움으로 총무원은 다시 집행부측에 돌아왔지만 분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정화회의를 사실상 이끌어온 월하(月下)종정은 경찰투입후 “공권력이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어 정교(政敎)분리라는 헌법정신을 어겼다”며 “정화회의가 그냥 손들고 말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화회의 지도부는 당분간 경찰수사로 위축되겠지만 이번 경찰투입을 ‘법란(法亂)’이라고 규정해 정부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면서 자신들을 지지해온 통도사나 은해사 또는 서울시내에 사무실을 열 가능성이 크다.
총무원 건물을 되찾은 송월주(宋月珠)전총무원장 지지파와 중앙종회 등 이른바 ‘종헌종법 수호파’는 지난달 12일 치르려다 무산된 제29대 총무원장 선거를 29일 실시할 예정이다.
후보로는 지선(知詵)백양사주지와 94년 불교개혁의 후원자였던 고산 쌍계사주지가 나섰다.
그러나 새 총무원장이 선출된다해도 종정과의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한 총무원측과 ‘종정 지지파’간의 지리한 대립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