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주사 대웅전 서쪽 처마끝에 달려 있는 풍경의 물고기다. 얇은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내 몸 속에는 맑은 피가 흐른다. 꼬리는 늘 살아 움직이고, 먼데서 불어온 미풍에도 하늘을 날 듯 지느러미를 하늘거린다. ‘푸른툭눈’이라는 예쁜 이름도 갖고 있다….
결 고운 서정으로 동심과도 같은, 순정(純正)한 영혼의 울림을 시에 담아온 작가 정호승. 그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인’(열림원)을 펴냈다.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섰을 때였어요. 문득 대웅전 처마끝에 달린 풍경의 물고기 한 마리가 보이지 않고 빈 쇠줄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더군요. 그 물고기가 왜 무엇 때문에 어디로 날라갔는지 궁금해서 이 동화를 쓰게 됐습니다.”
그는 동화를 쓰면서 왜 자신의 삶에 바람이 부는지, 왜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자신의 존재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동화는 운주사 풍경의 물고기 한 마리가 진정한 사랑의 풍경소리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비어(飛漁)가 되어 세상을 떠도는 푸른툭눈의 이야기. 동화는 다독이듯 속삭인다. ‘만남은 신비하다. 그리고 사랑도 신비하다. 만남을 통해서 누구나 삶의 신화(神話)를 쓰기 시작한다….’
이 겨울 스산한 바람이 지나는 길목길목, 사람은 누구나 그 시린 가슴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풍경소리를 감추어놓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가만히 그 풍경소리를 끄집어내 들려준다.
푸른툭눈이 오랜 방황을 끝내고 옛사랑과 다시 만나는 장면. 그것은 우리가 끝끝내 다다르고 돌아와야 할 곳은 다름아닌, 바로 사랑의 처마끝임을 일러준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오래 솔잎냄새 같기도 하고, 은은히 단풍 든 냄새 같기도 한 풍경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한 잎 낙엽으로 썩어/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