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궁동. 충남대 ‘쪽문’으로부터 동으로 5백m 가량 뻗으며 가지를 친 거리. 반경 7㎞안에 한국과학기술원 대덕대 목원대 대전산업대 침례신학대 방송통신대 등 7개 대학이 몰려 있다. 대전 도심에서 버스로 40여분 거리. 서울의 압구정동을 빗댄 ‘압구궁동’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번화함과 문화를 자랑.
▼ 거리 ▼
야트막한 봉암산을 뒤로 하고 갑천을 내려다보는 좌우폭 5백여m의 ‘활모양’ 터. 그래서 동네이름이 궁동이다. 이 거리가 번창하면서 붙은 공식명칭은 ‘대학로’. 하지만 이 곳 대학생 사이에서는 ‘로데오거리’로 통한다. 유성온천과 엑스포과학공원에서 각각 차편으로 5분거리.
88년 이후 자취집 하숙집 분식집 등이 밀집한 대학촌으로 자리잡았고 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상가가 들어섰다. 94년에는 유성구가 관광특구로 지정돼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유흥가’로 떠올랐다. 수백개의 음식점 카페 노래방 록카페 등이 들어선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약 2년전.
10년이 채 안된 거리인만큼 젊은 분위기가 구석구석에 충만. 3∼5층의 신축건물에 층층이 들어찬 업소들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 최근에는 6,7개층 전체에 카페 양식당 삼겹살집 록카페 노래방 등 대학생을 겨냥한 업소가 가득한 ‘대학생 콤플렉스’까지 들어섰다. 이 거리를 자주 찾는 김봉옥씨(26)는 “대전지역에 있던 이전의 어떤 거리와도 다르다.젊은이가 찾는 대부분의 것이 있다”고 설명.
▼ 사람 ▼
분식집과 카페를 찾는 대학생을 제외하곤 한산하던 거리에 해질무렵부터 승용차들이 밀려든다. 좁은 도로변과 골목골목에는 빽빽히 차들이 세워지고 20대초중반의 젊은이가 거리를 메우기 시작. 오후 8∼9시경에는 카페 레스토랑 노래방에 젊은이가 북적거린다.
차분하고도 세련된 도회풍의 옷차림들. 하지만 대학생다운 검소함도 배어있다. ‘압구궁동’의 진면목은 버스편이 끊어지는 자정무렵에 펼쳐진다. 대전시내 택시들이 손님을 찾아 몰려들고 번쩍이는 네온사인 아래 ‘밤을 잊은 20대’의 웃음소리가 요란.
전체 유동인구 가운데 70∼80%가 대학생. 간간히 요란한 옷차림의 10대가 얼씬거린다. 나머지는 대학시절의 향수를 찾아온 20대중후반∼30대초반. 카페 ‘멕시코’의 아르바이트생인 김도형씨(19·충남대 영문과1)는 “새벽 5시까지 쉴새없이 사람들이 오간다. 새벽에는 유성온천에 놀러왔던 30, 40대도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기위해 찾아온다”고 설명. 봉암산 뒤편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대덕연구단지 50여개 연구소의 20대후반∼40대초반 연구원도 궁동을 지탱하는 힘.
▼ 색깔 ▼
5분거리에 있는 온천1동(유성온천)과 비교해보면 색깔이 분명해진다. 온천 부근에 들어찬 나이트클럽 호텔 룸살롱은 궁동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서울의 대학로나 압구정동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카페 레스토랑 비디오방 노래방 오락실 그리고 몇몇 록카페가 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싸고 맛있다’는 것이 이 거리의 경쟁력. 커피값은 1천5백∼2천5백원, 라면밥 된장찌개백반 비빔밥 등 식사가 2천∼3천원. 골목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삼겹살집의 경우 ‘1인분 1천원’짜리가 수두룩하고 돼지삼겹살도 1㎏에 1만원. 6천원에 생맥주 2천㏄짜리 피처 하나와 안주 두종류를 내는 맥주집도 있다.
궁동이 한창물이 올랐던90년대 중반에는 서울 압구정동의 ‘오렌지족’이 심야드라이브로 원정에 나서기도. 청주나 광주에서 찾아오는 젊은이도 상당수. ‘압구궁동’이라는 이름이 전국에 전파되는 데는 PC통신의 힘이 컸다.
회사원 이주호씨(30·프로그래머)는 “1,2년 전까지만 해도 PC통신 동호회 전국모임을 궁동에서 갖곤 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서 거의 등거리에 있는데다 가격이 싸고 젊은이가 원하는 분위기와 전원적인 느낌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
화려한 궁동에도 ‘시련’은 있다. 대학로번영회의 이흥현총무는 “9월부터 대전 도심에도 심야영업제한이 풀리면서 중구 은행동 등 번화가로 젊은이가 많이 빠져나갔다. 게다가 IMF시대를 맞아 대학생의 상당수가 휴학했다”고 말했다.
〈대전〓이기진·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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