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안도현「고래를 기다리며」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늘 그렇듯 삶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으 대상이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고래가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리다 보면

파도가 되고, 파도가 되어 산산이 부서져 버릴지라도. 그렇게 부서지다 보면 나는 어느새 바다가 될 것이고 고래가 될 것이다.

기다림의 끝에 찾아오는 합일(合一)의 희열! 바다로 가자.

<이광표기자·시인>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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