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이 되도록 평생 남편(54)이 주는 월급으로 살아온 임씨는 작년 11월 서울 홍익대 앞에 꽃가게를 차렸다.
IMF관리체제 이후 인력감축 물결이 밀려오면서 은행 지점장이던 남편이 작년 10월말 대책없이 직장에서 떨려난 것이 계기였다.
남편의 퇴직금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퇴직금 1억2천만원은 투신사에 맡겨놓고 매월 이자를 받아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유일하게 안정적인 수입원이다.
그러나 금리가 날이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임씨는 퇴직금 이자만으로는 올 한해를 버티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미술대학 진학을 위해 홍대앞 미술학원을 다니던 딸아이를 바래다 주면서 꽃집을 눈여겨 봐두었다. 평소 꽃꽂이에 취미가 있었다. 8천만원을 들여 13평짜리 가게를 얻어 ‘백합플라워’라는 이름의 꽃집을 열었다. 대학가에 몰려드는 젊은 연인들과 주변에 밀집한 보험회사를 타깃으로 삼는 판매전략을 세웠다. 남편은 과거 은행시절의 인맥을 이용해 홍보일을 맡았다.
올해 목표수익은 2천만원.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자녀 학비를 마련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올해는 임씨네 살림에서 학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해가 될 것같다. 아들은 대학 4학년에 올라가고 딸도 대학에 입학한다. 작년 한 학기 아들 등록금이 2백70만원. 올해 등록금이 얼마나 인상될지는 모르지만 대학생이 2명으로 늘어나면 등록금으로만 올해 1천2백만원 가량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자녀 용돈이 한달에 40만∼50만원. 시부모님을 포함한 6인 가족 식비, 아파트관리비 등을 합치면 학비를 빼고도 월 2백만∼2백50만원은 있어야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다.
남편이 30년간 직장생활에서 남긴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일산의 48평짜리 아파트와 퇴직금 1억2천만원이 전부다.
임씨부부도 자녀 결혼자금과 노후대책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됐다. 그동안 자녀 결혼자금으로 쓰려고 매월 30만∼40만원씩 적금을 붓고 노후를 위해 개인연금으로 월 20만원씩 넣었다.
지금 같아서는 저축액을 줄이는 도리밖에 없다. 꽃가게가 잘돼 미래에 대비하는 저축을 줄이지 않아도 되기를 바랄 뿐이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