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訴 기각 칠순할머니 『며칠이라도 자유롭게…』

  • 입력 1999년 1월 7일 19시 05분


“50년 동안 복종으로 살아왔다. 며칠이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50년 넘게 열심히 살아왔다. 이제 와서 이혼당할 이유가 없다.”

1심에서 이혼판결을 받았다가 2심에서 기각판결을 받은 김창자(金昌子·76)할머니와 남편 이모할아버지(84)의 이혼소송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2심 판결이 여성의 ‘억눌린 삶’을 외면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양인은 아직도 날카롭게 대립한다. 할머니는 7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남편의 무관심과 가부장적 태도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법원도 우리가 이제 헤어질 때라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대리인인 황산성(黃山城)변호사의 주장은 정반대다. 황변호사는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할머니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할머니는 자신의 과오를 숨긴 채 재산분할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혼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조인들은 노부부의 공방을 ‘소크라테스의 이혼’에 비유한다. “소크라테스가 그의 아내가 악처(惡妻)라는 이유로 이혼소송을 낸 경우 이를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것.

이는 재판상 이혼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혼에 관해 우리 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有責)주의’를 따르고 있다. 유책주의는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이혼을 인정하는 것. 이에 반해 서양에서 보편화한 ‘파탄(破綻)주의’는 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상 이혼을 인정하자는 주의다.

법조인들은 “유책주의 관점에서 보면 악처라는 소크라테스의 아내에게도 이혼당할 만큼 결정적인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2심판결도 유책주의의 결과라는 해석인 것이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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