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부부 이혼 조명]칠순할머니 이혼訴패소계기

  • 입력 1999년 1월 8일 19시 16분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자식을 다 출가시킨 노년 부부가 “더는 못살겠다”며 가정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97년 한해동안 재판을 통해 이혼한 60세 이상 노부부는 불과 7쌍이었지만 98년에는 조사된 7,8월 두달동안만 모두 11쌍의 노부부가 갈라섰다. 최근 52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과 헤어지겠다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1심에서는 승소, 2심에서는 패소한 70대 할머니의 사연을 통해 노년 이혼의 현상과 각계의 의견을 들어본다.>>

98년6월 김창자(金昌子·76)씨가 낸 이혼소송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남편 이모씨(84)의 상습적 폭언과 지나친 의심등망상증세로인해결혼생활이 더이상어렵다”며원고승소판결을내렸다.

그러나 4일의 2심판결에서는 “이씨가 결혼초부터 할머니를 무시하고 상당한 수입에도 최소한의 생활비만 대준 점은 인정되지만 혼인 당시의 가치기준으로 볼 때 52년간의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할아버지가 최근 의처증 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령에 따른 정신장애 탓인 만큼 할머니는 오히려 할아버지를 돌보고 부양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해방 직후인 46년10월. 남편 이씨는 김씨와 결혼하기 전 이미 두차례 결혼한 경력이 있었고 아들 한명을 두고 있었다.

당시 이씨는 운수업을 하고 있는 재력가였지만 김씨는 어려운 가정의 무남독녀로 일본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이었다.

이씨측은 자신의 결혼경력에도 불구하고 김씨 집안이 자신의 재력을 보고 딸을 줬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씨는 이씨가 결혼 경력과 전처 소생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자신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결혼 다음해 3월 김씨는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김씨는 그 이유를 ‘남편의 강요’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남편이 부인에게 식비 이외의 생활비를 거의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은 양쪽의 주장이 일치한다. 김씨는 “남편이 가정에 애정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씨는 “아내가 살림을 잘 못하는데다 돈을 헤프게 쓰는 편이어서 최소한의 생활비만 주었으며 이혼소송도 재산 분할을 노린 것”이라고 맞선다.

김씨의 경우처럼 함께 살기를 원치 않는 노인들이 쉽사리 이혼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법원이 원칙적으로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이혼을 인정하는 ‘유책(有責)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 예컨대 남편이 간통을 해 파탄에 이른 경우 부인은 이혼청구를 할 수 있지만 간통의 책임이 있는 남편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한 경우 이혼을 인정하는‘파탄(破綻)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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