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계 회사인 코마제코리아의 홍윤표과장(31)이 화이트 칼라들의 생활을 다룬 만화 ‘천하무적 홍대리’(작은책)를 내놓았다. 샐러리맨이 그린 국내 최초의 ‘직장 만화’라며 시중에 화제다. 코마제 코리아는 우라늄 등을 수입판매하는 회사.
▼자화상 ▼
입사 5년차. 무스를 잔뜩 바른 고슴도치 머리에 졸리는 눈. ‘천하무적…’의 주인공 ‘홍대리’는 바로 2년전 대리시절 홍과장 자신. 역삼각형 얼굴에 마른 스타일. 금테 안경만 쓰면 홍과장의 복사판.
“머리를 까맣게 칠하고 싶었지만 맘대로 안돼 여섯카락으로 그렸다. 안경도 그려 넣고 싶었는데 ‘뺀질거림’과 ‘장난기’가 반감돼 그만 뒀다.”(홍과장)
▼‘불량 직장인’과 ‘종이 호랑이’▼
홍대리는 골초에 영어회화도 제대로 못하며 밥먹듯 지각한다.‘뺀질뺀질’해 부장을 골탕먹인다. 부장에게 야단맞으면 겉으론 죄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론 ‘동해물과 백두산∼’ 애국가를 부른다. 그만의 스트레스 탈출법.
그러나 홍대리는 구조조정의 와중에도 끄덕없다. 오히려 엉뚱한 행동을 통해 직장내 사소한 문제와 싸우는 ‘투사’로 그려진다. 이점이 독자에게 묘한 쾌감을 준다는 평가.
반면 상사인 부장은 불쌍할 만큼 무력하다.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 받고 말 안듣는 부하 직원들에 시달린다. 그도 윗분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샐러리맨. 결국 홍대리에 동화(同化)된다.상사에게 불려가 혼나면서 ‘꽃피는 동백섬∼’을 부르고 만다.
▼이율배반 ▼
부장에 맞서는 홍대리도 똑똑한 후배에게 만큼은 삐딱하다. 입사 2년차로 서류작성의 귀재인 최주임은 홍대리의 괴롭힘 대상. 영어회화 프로급에 업무능력이 탁월한 것이 ‘죄’.
홍대리는 최주임이 영어학원에 가는 날만 골라 최주임에게 술을 사고 노래방에 끌고가 밤새 괴롭힌다. 부장 핑계를 대며 탈출구를 찾는 최주임에게는 “너 누구하고 회사생활 더 오래할 거 같냐?”며 ‘협박’한다.
▼살벌한 생존공간 ▼
‘천하무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늘 혼자다. 부장을 제외하고 모두 칸막이를 하고 ‘그만의 공간’에 앉아있다. 배경으로 자주 나오는 화장실과 방도 ‘개인만의 공간’. 우리란 없다. 이들은 끝없이 경쟁한다.
▼결재서류에 왠 만화? ▼
홍과장의 얘기. “첫사랑의 열병처럼 만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결재서류에 무심코 만화를 그렸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습니다. 겪고 느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담았을 뿐입니다. 이왕 그린다면 즐겁고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바로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만화를 본 김진만씨(31·한솔제지 대리)의 독후감. “신나는 일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직장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홍대리’가 대신 해줘 위 아래 할 것없이 통쾌해 하는 것 아니겠느냐.”
▽홍윤표과장은 누구? △67년 강원 춘천 태생 △서강대 화공과 졸 △92년 코오롱상사 입사 △97년∼ 코마제코리아 과장 △96년 문화센터에서 만화강좌 수강 △자칭 ‘이성적인 엉뚱형’
〈이호갑기자〉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