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요즘 30,40대 남자 황지우 시집 읽고 있을거다

  • 입력 1999년 1월 26일 19시 10분


“문학에도 황풍(黃風)이 부는건가.”

요즘 문단의 화제거리는 단연 황지우의 신작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의 선전(善戰)이다. 지난해 12월21일 발간된 뒤 한달만에 2만5천여부가 팔렸다.

‘어느 날 나는…’의 인기는 뜻밖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몇년간 베스트셀러가 된 잠언시나 연애시등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 평론가들로부터 때로 ‘요설’이라고까지 공격받는 다층적인 의미구조에다 인쇄된 활자체조차 다른 시집의 3분의 2크기밖에 되지 않아 황지우의 시들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고정팬을 감안해 ‘넉넉잡아’ 초판 5천부를 찍었던 출판사도 독자반응에 얼떨떨해할 뿐이다.

한달만에 2만5천부 판매는 결코 최대매출기록이 아니다. 일례로 96년 10월 발간된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1월25일 현재 70만부가 팔렸다.

그럼에도 ‘어느 날 나는…’의 인기에 출판계와 문인들이 각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그의 시가 침묵하고 있던 독자층을 시의 세계로 이끌었기 때문.

서울의 교보 종로등 대형서점 영업부에서 분석하는 ‘어느 날 나는…’의 주 독자층은 대학생 이상의 30,40대. 영풍문고 방현철대리는 “특히 화이트칼라 남성독자들의 구매가 눈에 띄게 많다”며 “최근 몇년간 베스트셀러 시집의 주독자층이 중고등학생이나 여성이었던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30,40대 남성독자들이 ‘어느 날 나는…’에 매료되는 이유는 황지우의 시가 자신들의 정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 30대 독자인 평론가 이광호씨(37)는 “황지우의 시에는 굴곡많은 세월을 거쳐온 지식인의 회한, 그들이 지금 현재 품고있는 서정이 빼어난 기교로 묘사됐다”며 “중년 사내들은 자신의 초상을 보는 느낌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느 날 나는…’의 인기는 90년대 이후 20대 여성독자들을 중심으로 책을 기획해온 출판계의 편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열림원 정은숙주간은 “30,40대 남성들은 시나 소설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 출판계의 통념이었지만 중장년세대의 감성을 포용해줄 작품이 없었던 것이지 그들이 문학시장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한 독자가 아니라는 것이 ‘어느날 나는…’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자기성찰이 가능한 연배인 중년남성독자층의 등장은 시장확대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의 깊이를 더하는데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는 기대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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