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이주향/사랑이 별거라든?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28분


못생겼지만 똑똑한 여자를 사랑할까, 예쁘고 섹시하지만 멍청한 여자를 사랑할까? 이 이분법에 충실한 영화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이런 이분법은 기분나쁘다. 편견을 뒤집어쓴 남자의 시선으로 여자의 세계를 재단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분법에 사로 잡혀 있는 남자는 사랑도, 여자도 모르는 매력없는 남자이고, 여자가 이런 이분법에 사로 잡혀 있으면 여자들끼리 서로 헐뜯을 일 밖에 없다. 톨스토이가 그랬지.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운명적 사랑의 말 ‘안나 카레니나’. 그런데 현실은 그 운명만큼이나 강하고 복잡하며 고단하다. 사랑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일까, 무능한 사랑일까?

사랑은 능력이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능력이 필요없지만 빠진 사랑을 지키는 데는 절대적으로 능력이 요구된다. 그걸 말하고 있는 영화 ‘파리가 당신을 부를 때’. “아내보다 일이 중요한가?” “남편보다 일이 중요한가?” 한탄조의 이런 대화는 무능력한 사랑의 표본이다.

그 능력은 타고나는게 아니라 여러번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만들어지는 거겠지. 사랑의 비수, 그 칼로 인해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것, 카프카의 사랑이다. 어디 카프카만의 사랑일까? 배려보다 열정이 앞서는 젊은 날 사랑의 속성일테지.

열정만 있는 사랑은 대체적으로 고통스런 사랑이다. 열정적이지만 미숙한 청년과 속깊은 여자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러브 앤 워’를 보면 느낀다. 너무나 신중해서 망치는 경우가 사랑에는 있구나!

가는 사람 편하게 배웅하고 오는 사람 반갑게 맞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 별거라던? 인생 그 자체뿐인 것을”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런데 인생은 뭘까? 혈투일까, 빈칸일까, 낙서일까, 아니면 수수께끼일까? 그 물음을 묻기 위해서 실은 치열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피아노를 길들이지 않으면 피아노는 너를 삼키는 괴물이 될거야.” ‘샤인’의 말은 인생에서도 유효하다.

그 길들여짐 때문에 내 사람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도 흔들리지 않는 거겠지. ‘어린왕자’의 유명한 말. “우리가 길들여질 수 있다면…넌 내게 이 세상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되고 난 네게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될거야.” 그 믿음을 갖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흔들리고 상처받아야 할까?

이주향<수원대교수 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