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기 피어 있습디다”
13일은 ‘꽃을 주던 남자’ 김남주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 때맞춰 3권의 책이 출간됐다. 서정시선집 ‘낮달’(가제, 문학동네)과 수감시절 그가 썼던 연서(戀書)를 모은 ‘편지’(이룸) 아내 박광숙씨의 산문모음 ‘빈들에 나무를 심다’(푸른숲)가 그것이다.
‘낮달’에 수록된 그의 시들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써 호소력있게 읽힌다. ‘전사(戰士) 김남주’에 가려져있던 서정시인으로서의 면모가 새삼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뎅이로 하지?//이제 갓 네살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추석무렵’)
애당초 그의 시심은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찬 서리/나무 그늘 나는 까치를 위해/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옛 마을을 지나며’)에서 발원한 것이었다.
이념으로 그린 유토피아가 ‘평등세상’이었다면 그의 본원적인 감성이 돌아가고 싶어했던 곳은 ‘어머니의 고추밭과 아버지의 논,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이 가을에 나는’중)였던 것이다. ‘땅을 갈며 씨뿌리고 수확하는 농사꾼’이 되기를 원했던 그는 혁명시인이기 이전에 ‘대지의 시인’이었다.
살아있다면 쉰둘. 변혁과 정의 희망같은 단어가 생경해져버린 시대에는 그의 시정신도 ‘먹고 사는 일에 익숙해져 내 이름 하나도 기억 못하는’(‘근황’중) 일상에 마모되고 말았을까.
그가 남긴 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시인은 필요없는’것. (‘시인’중)인간의 존엄과 이상을 훼손하는 억압이 남아있는한 시인은 언제나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이어야 한다고 그의 시는 말한다.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20,21일 독자와 함께 전남 해남의 김남주 생가를 방문하는 추모문학기행을 마련했으며 시인이 잠든 광주 망월동 묘역에 시비를 세우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모금창구는 농협 605―02―509948 김준태. 문의 02―313―1486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