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엔날레」 반쪽행사 될판…이권다툼등 혼란

  • 입력 1999년 2월 7일 19시 29분


내년 3월말 개막 예정인 제3회 광주 비엔날레를 둘러싼 갈등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이사장 고재유 광주시장)가 지난 연말 전시 기획을 주관하는 전시총감독과 전시기획위원들을 돌연 경질한 데서 비롯된 이번 사태는 국내 문화 예술인들의 분열을 초래한 동시에 1년 남짓 남은 비엔날레의 정상적인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전망은 어떤지 알아본다.

▼ 그동안의 경과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지난해 12월21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3월말 위촉한 최민 전시총감독을 “구체적인 업무실적이 없다”며 전격 해촉. 전시기획위원회의 위원 19인중 김우창 고려대교수 등 13인도 28일 사퇴. 29일 광주비엔날레 정상화 및 관료적 문화행정 철폐를 위한 범미술인 개혁위원회(범미위·위원장 김용익 경원대 교수)가 출범해 “비엔날레의 개혁을 시도해왔던 전시총감독을 해촉한 것은 관주도의 문화 행정실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 비엔날레 재단은 30일 오광수 환기미술관장을 새 전시총감독으로, 이종상서울대 황영성조선대교수 등을 새 전시기획위원으로 위촉.

오총감독에 대해 80년대 초반 민중미술계열을 탄압하려는 정보기관에 ‘협조’했다는 전력 시비가 일고 범미위는 1월5일 광주비엔날레 보이콧 운동을 시사.

20일 광주지역 시민단체대표들은 광주비엔날레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공동대표 정찬용 광주YMCA사무총장 등 16인)를 발족해 “비엔날레를 관치 행정의 성곽에 가두어 놓는 한 그 앞날이 뻔하다”고 지적.

28일 범미위와 상반된 입장을 내건 ‘광주비엔날레를 아끼는 범미술인 전국연합’(광범연)이 출범. 광범연은 오총감독을 신뢰하며 바뀐 비엔날레 집행부를 지지한다고 밝힘. 공동대표는 하철경호남대교수 임동락동아대교수 등.

2월1일 재단이사회는 시장이 당연직으로 맡아온 재단이사장직을 민간이 맡도록 결의, 재단의 민영화 방침을 밝힘. 광주시는 2월27일까지 새 이사진 구성과 이사장 선출을 마치겠다고 밝힘. 또 행정부시장과 광주시립미술관장이 겸직하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사무국의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직도 민간에 개방.

오총감독은 3일 전력 시비를 제기한 화가 임옥상씨 등 9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광주지검에 고소. 5일 오총감독은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발표.

▼ 사태의 원인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전시총감독에 대한 애매한 역할 규정. 재단은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이번 3회부터 전시총감독이라는 직제를 신설했으나 권한이나 위상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전시총감독으로 위촉된 최민씨는 예산 집행이나 인사권을 둘러싸고 비엔날레 사무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그는 광주비엔날레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진단아래 사무국의 대폭 축소, 문화예술전문인 중심의 운영 등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내놓은 개혁안에서 비엔날레 상근 직원을 70% 이상 줄이고 사무국을 자신의 지휘아래 두려 했다.

최씨의 이런 개혁성향은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시 파견공무원이 대다수인 사무국의 반발을 초래했으며 급기야 광주비엔날레 조직은 편가르기 양상을 보였다. 광주비엔날레 사태를 미술인 대 행정관료의 싸움으로 보는 해석은 이런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외에도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중심의 것이라고 고집하는 지역 이기주의 정서도 사태를 부추켰다. 오총감독도 “광주에 가면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의 행사이고 세계적 이벤트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물론 2백4억원이라는 광주비엔날레 기금이 모이기까지 광주시와 시민들이 큰 기여를 했지만 그럴수록 비엔날레는 광주를 넘어선 국제적 행사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미술계내 고질병인 지연이나 학연으로 인한 파벌 싸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술계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조직 구성원이 전면 물갈이되는 양상이 이번 사태를 증폭시켰다는 것. 공교롭게도 최민씨등은 80년대 민중계열에서 활동한 작가나 평론가들이 많고 현재 새 집행부는 모더니즘 계열에서 활동한 이들이 많다.

광주 시장이 지난해 6월 지자제 선거에서 바뀌면서 비엔날레 행정의 전반적인 구도가 틀어졌다는 풀이도 있다. 전임 시장이 위촉한 최민씨가 새 시장측과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

이번 사태는 또 비엔날레를 한번 치를 때마다 사용하는 1백여억원의 예산을 두고 벌이는 이권다툼의 측면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1, 2회때도 전시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이벤트가 많았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를 대해 먹을 게 없으면 싸움도 벌어질 리 없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실정이다.

▼ 앞으로 어떻게 되나

광주시와 비엔날레 재단은 새 이사장과 이사진 선정을 약속해 민영화의 길을 텄고 사무총장과 차장도 민간에 개방, 재단과 시립미술관을 분리시키는 디딤돌을 놓았다. 다만 이번 3회는 시일이 촉박해 관민혼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

그러나 범미위측은 새 이사장의 선출과 이사진의 확충과 관련, 현 이사진을 전면 거부하고 있으며 특히 5일 열린 광주비엔날레 주제 발표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다.

범미위측은 비엔날레 주제 발표를 새 이사진이 구성되는 27일 이후로 미루자고 요청했으나 오총감독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자 범미위측은 “오씨의 기획안은 졸속이며 구체적인 안이 준비도 되지 않은채 무리하게 발표했다.”며 비난했다.

오총감독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人+間(사람 인+사이 간)’으로 발표했으며 구체적인 전시 기획안은 이달 말께 다시 공개할 예정.‘人+間’은 새천년의 문턱에서 인간이 처한 조건을 탐색하고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해보자는 의미.

오총감독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전시총감독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는 게 여의치 않으면 나도 사퇴할 수 있다”며 “비엔날레의 민영화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지금상황은 3회 대회를 살려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광주시와 시민단체 양측이 문제 인식에는 서로 접근한 듯하지만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동안의 과정에서 문화예술계의 불신과 골깊은 반목이 드러나 언제 불거져 나올지 모르는데다 광주시가 추진하려는 민영화의 방안이나 일정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범미위는 최민씨의 명예회복과 오총감독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문화예술계에서는 이에대해 주최측이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3회 비엔날레는 ‘반쪽 행사’로 전락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허 엽기자〉h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