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폭의 그림같은 ‘승선교’를 지나 도착한 전남 순천 선암사. 고색창연한 대웅전과 아담한 전각들에 못지않게 유명한 건물이 있다. 학이 날아가는 듯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깔끔한 목조건물. 급한 마음에 찾아간 사람들에게 입구부터 편안함을 주는 ‘해우소’다.
측면 2칸, 정면 6칸으로 전국에서 최대 규모의 전통 해우소인 이곳에선 남녀 각각 8명이 한꺼번에 ‘근심’을 해결할 수 있다.격실 칸막이가 목 높이밖에 안돼 고개를 돌리면 옆사람의 뒤통수가 보이는 재미있는 실내 구조.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은 건강의 3대 비결. 선암사의 해우소는 진정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10여m 아래로 떨어지는 시원스런 물줄기를 보고 있을 때의 쾌감은 앞이 꽉 막힌 양변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아랫도리에 살랑살랑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그 시원함을 더해준다. 주지 지허(指墟)스님은 “여름에 피서갈 필요없어. 여기와서 앉아봐. 시원해서 나가기가 싫을 게야”라며 웃음짓는다. 과학적 처리 능력도 현대적 시설에 못지않다. 1층 바닥에도 햇볕이 들고 바람이 통하기 때문에 냄새가 안난다. 낙엽 왕겨와 함께 자연발효된 사람의 내용물은 퇴비로 쓰인다.
현재 대부분 사찰의 해우소는 보수과정에서 거의 수세식 변소로 바뀐 상태. 아직까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해우소로는 영월 보덕사 해우소, 3면이 연못으로 된 송광사 해우소, 아담한 정취가 있는 불일암 해우소, 고산지대 바위틈을 이용한 청량산 청량사와 홍천 수타사, 개심사 해우소 등. 오지탐험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탐험클럽(대표 황영철)은 해우소 시리즈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토종연구가 홍석화씨는 “자연과 인간의 순환고리를 이어주던 토종 변소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서 ‘재앙’이 싹트기 시작했다”며 “대웅전이나 석탑에 못지 않게 사찰의 해우소도 중요한 유산인만큼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한다”고 말했다.
〈순천 선암사〓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