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즈분만]産痛「남편과 함께」하는 곱절의 사랑

  • 입력 1999년 2월 22일 19시 26분


《산모의 고통을 덜어주며 아내와 산통(産痛)을 나누는 ‘라마즈 분만법’. 신세대 부부에게 인기다. 다음은 최근 첫딸을 얻은 동아일보 사회부 김경달기자(31)의 라마즈분만 체험기.》

손톱에 눌린 자국은 붉은 빛이 선명할 정도로 깊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정작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분만대기실에 들어온지 2시간. 오전9시.

내 손을 붙잡은 채 간헐적인 진통을 견뎌내던 아내가 갑자기 손가락을 곧추 세우더니 손톱으로 내 손등을 ‘꼬옥’ 누른 것이다. 얼굴을 찡그린 채, 깨문 입술 사이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첫 고비였다.

아내는 나보다 성격이 여유로운 편. 성격에 반해 만난지 두달만에 청혼했을만큼. 새벽2시경 진통이 10분 간격으로 찾아오고 이슬(분비물)이 늘었지만 혼자 1시간반이나 견디고서야 나를 흔들어 깨운 아내였다.

“진통이 5분간격으로 오면 병원으로 오세요.” 무뚝뚝한 간호사의 전화답변을 전해듣고 시계만 쳐다보다 병원을 찾았다. “자, 들이쉬고 내쉬고…. 하나 둘, 호흡을 해야지. 호흡!”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연상법’은 이미 ‘물 건너갔다’. 50초쯤 지나고 진통이 멎어갈 때 아내는 손가락을 눕혔다.

진통이 또 시작됐다. 비명과 용을 쓰는 모양새가 심해졌다. 30분쯤 지나자 진통간격은 2분정도로 줄었다. 불쑥 들어온 간호사가 기계를 보고 담요도 들춰보더니 “5㎝ 열렸네요” 하고는 나가버렸다. ‘아이가 나오려면 산도가 10㎝정도 모두 열려야 한다는데, 이제 절반?’

“하나 둘, 호흡을 하라니까.” 높아만가던 내 고함이 한순간 멈췄다.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도 고개를 젖히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안되겠다 싶어 더 열을 냈다.

9시50분. 진통은 1분 간격으로 다가왔다. 산도도 8㎝가량 열렸다.

“이제 후기에 접어든 것 같다. 조금만 더 힘내자.” 아내는 별 반응이 없었다. ‘아차, 히히히후를 해야지.’

‘히’하고 내뱉고 다시 ‘히’하며 들이쉬기를 세번 반복하고 마지막에 입을 모아 ‘후’하고 내뱉은 뒤 이 과정을 반복하는 후기호흡법. 아내는 심호흡 한 번조차 힘겨워했다. 연신 몸을 비틀며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내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갔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애…. 어떡해” 잠깐 진통이 멈춘 사이, 아내가 던진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못하다니…. 수술을 하자고?’가슴 언저리에서 ‘쿵’소리가 울려왔다. 10시10분경. ‘내색하면 안되지. 우선 못들은 척하자.’

“호흡을 해야 덜 아프지…. 착하지. 하나 둘! 빨리.”

아무리 흔들어도 아내는 꿈쩍도 하지않았다. 고함을 지르자 아내가 처진 고개를 들었다. 반가워했더니 웬걸, 계속 비명만 질러대는 게 아닌가. 간호사가 나타났다.

“라마즈를 했다는 분들이 못참고 소리를 질러대면 어떡해요. 남편분이 제대로 좀 하셔야죠.” 암팡진 목소리 뒤로 커튼소리가 요란했다. ‘아우성’의 구성애씨가 간호사시절 산모들에게 ‘당신만 애 낳느냐.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5주간이나 토요일 오후를 헌납하며 꼬박꼬박 강의를 들었는데…. 단계마다 남편이 할 일을 강사가 하나하나 일러줬는데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간호사의 야단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내도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몸이 경직돼 보여 다리를 조금씩 주물렀다. 갑자기 아내가 허공에 손을 내둘렀다. “저기, 밖에….” 간호사를 찾는 소리였다. 간호사의 발자국소리가 ‘슬로우 비디오’의 효과음처럼 들렸다. 담요를 들추던 간호사가 ‘어머’ 하며 황급히 누군가를 불렀다. “진행이 빨리 됐네. 좋아요, 힘을 주세요. 다 돼가네요.” 아기의 까만 머리가 슬쩍 보인 것 같았다.

분만실로 옮길 시간. 10시50분. 아내의 비명에 울음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분만실 양쪽 작은 칸막이 속에서 진통을 겪는 예비산모들의 비명이 들렸다.

아내는 ‘수술대에 오른 환자처럼’ 누웠다. 무릎을 세운 채로.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머리맡에 서서 한쪽 손을 꼭 잡았다. 다른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줬다.

여의사가 들어왔다. 간호사가 외쳤다. “이제 힘을 꽉 주세요.” 아내의 머리가, 허리가 들썩였다. 나의 손과 어깨 다리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잘한다. 계속 힘줘!” 아내의 찡그린 얼굴 위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잘 했어요.”

그 소리에 겹쳐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앙, 앵”

의사와 간호사의 손길이 빨라졌다. 의사가 길게 탯줄을 잘랐고 애기를 받아든 간호사가 의사의 말을 따라 외쳤다. “11시25분. 3.22㎏.”벽앞의 작은 세면대로 아기를 옮긴 간호사가 불렀다. “아빠가 와서 인사하세요.”무슨 말을 해야할까. 검은 실선을 그어놓은 듯 꽉 감긴 눈매를 쳐다봤다. “안녕, 내가 아빠다.”

이 무슨 희한한 일인가. 애기가 내 소리에 눈을 ‘끔쩍’하고 뜨는 게 아닌가. 울음소리도 뚝. ‘매일밤 뱃속에서 듣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챈 건가’.

간호사가 가위를 내밀며 물었다. “탯줄 자르실래요?” 엉겁결에 간호사가 가리키는 곳을 잘랐다. ‘사각 사각’ 쉽게 잘렸다. 애기를 씻긴 간호사. “자, 손가락 발가락 모두 10개씩 맞죠?”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고요.” 그제서야 ‘아 딸이구나’ 싶었다. 뒤에서 아내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땀 맺힌 이마를 닦아주며 말했다. “고생했다.” 아내의 얼굴이 왜 그리 이뻐 보이던지….

〈김경달기자〉d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