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창]김용택 「섬진강 이야기1 ,2」

  • 입력 1999년 2월 22일 19시 40분


섬진강 중류의 마을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장산(長山)이란 한자말 대신 ‘진메’라는 토박이 이름으로 불리는 이 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든 문만 나서면 곧바로 섬진강이다.

그러나 그림같은 풍경과 달리 진메는 이제 몰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것은 머리 허연 노인들뿐.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며 버린 빈 집 마당마다 잡초가 수북이 자라있다.

진메에서 태어나 지금껏 고향 초등학교의 교사로 늙어가는 시인 김용택(51)은 이 마을의 흥망성쇠를 산문 ‘섬진강이야기1,2’로 기록했다.

사람의 훈기가 충만했던 시절의 논과 밭, 풀과 꽃, 벌레 그리고 이웃들의 얼굴과 몸짓을 기록해 두는 일이야말로 농사 대신 글을 배운 자신이 해야할 ‘일생일대의 작업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자의 필치는 꼼꼼하다.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까지 농촌 사람들의 일과 놀이를 이웃들에 대한 짧은 전기, 자연풍경에 대한 묘사와 씨줄 날줄로 단단히 얽었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결코 그 꼼꼼함에만 있지 않다.

한때 서른명의 아이들이 한줄로 길게 늘어서 오가던 진메강변의 등하교길. 그 강길의 아이들이 줄어드는 모습을 ‘몸속의 피가 빠져나가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저자는 마침내 단 한명의 학생도 오가지 않게된 어느 봄 텅빈 길을 바라보며 운다.

‘이농’‘농촌공동체 붕괴’같은 건조한 사회학적 용어들은 ‘섬진강이야기’속에서 이처럼 농촌을 지켰던 사람들의 한숨 눈물로 생생하게 증언된다.

저자는 가끔씩 이렇게 목청을 돋운다.

“비싼 돈 디려서 도서관 짓고 박물관 세우기 전에 고향동네 어르신들 먼저 살펴야 헌다고. 그런 노인네 한 분 돌아가시는 게 도서관 하나 없어지는 것이여.” 열림원. 각권 7,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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