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다 붉을 수도 없겠지
피고 지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득음의 경지에 이른
물방울 속의 먼지처럼
보이다가도 안 보이지
한 번 붉은 잎들
두 번 붉지 않을 꽃들
너희들은 어찌하여
바라보는 눈의 깊이와
받아들이는 마음의 넓이도 없이
다만 피었으므로 지는가
제 무늬 고운 줄 모르고
제 빛깔 고유한 줄 모르면
차라리 피지나 말지
차라리 붉지나 말지
어쩌자고
깊어가는 먼지의 심연처럼
푸른 상처만 어루만지나
어쩌자고
뒤돌아볼 힘도 없이
먼지의 무늬만 세느냐
―계간 ‘문학과 사회’ 9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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