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 요구
김주영 김원일 등 노장부터 갓 등단한 신예까지 전업소설가 30여명이 나선 속초 세미나. 난상토론의 핵심은 전업소설가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그 타개책이었다.
“작가는 병들어도 은행융자 하나 받을 수 없다. 생활고끝에 자살하는 문인까지 나오지만 아무런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이남희)
“문인들이 스스로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인세 수입의 일부를 갹출해서 상조회라도 만들어야 한다.”(김원일)
절박한 생존요구에 더해 자본주의사회의 한 직업인답게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원고청탁 받을 때 고료를 묻는 것은 우아하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전업작가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되는 추세라면 취직할 때 월급이 얼마인지 확인하듯 고료가 얼마인지도 물어야 한다.”(김주영)
“소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 때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낮은 원작료를 강요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작가 개개인이 이런 불평등계약의 상황에서 자기권리를 지켜내려면 집단 대응이 필요하다.”(이순원)
무대는 민족문학작가회의(야아 작가회의)로 옮겨간다. 27일 열린 99년도 작가회의 정기총회에서는 4월부터 두달간 ‘한국문인의 문학관에 관한 의식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이는 정부에 요구할 ‘문인복지법안’(가칭)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 변화를 위한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시도다.
이번 조사는 몇년전만해도 작가회의 내부에서 ‘경제투쟁’으로 되고 말았을 사안이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해 실시된 ‘문인복지실태조사’에서 ‘한달 평균 고료수입 16만9천원’이라는 절박한 생활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조금’ 10억원
이같은 위기 인식 속에 ‘문화관광부 출연 보조금 10억원’이 돌발변수로 등장했다. 문화관광부는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으로 생활고를 겪는 문화예술인들을 보조하기 위해 99년 3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중 문학부문 할당금액은 10억원.
이번 보조금의 특징은 도서구입, 문예지 원고료지원등의 간접방식이 아니라 문인에게 무상으로 직접 일정금액을 준다는 것.
기금운용을 위임받은 문예진흥원은 문화부가 정한 ‘다수 혜택’의 원칙에 따라 문인 1백명을 선정, 99년 한해동안 1인당 1천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3월 중 기금 수혜자를 가려낼 선정위원단을 구성해 곧 지원대상자를 결정한다. 지원받은 문인이 보조금을 창작에 활용했다는 증빙자료로서 출판사와의 계약서를 제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문단반응과 향후 방향
문인지원책이 마련된 것은 환영하는 분위기. 문인이 되는 것은 개인적 선택이지만 ‘민족고유의 문자로 작품을 남기는’ 창작은 사회의 문화적 재부를 더하는 공공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에서다.
그러나 다수 문인들은 보조금 운용방식에 우려를 나타낸다. ‘일회성 행정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크다. 이와관련해 문화관광부 하운규예술진흥국장은 “내년에도 제도를 존속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한 바 없다”고 말했다.
경희대 도정일교수(영문과)는 “보조금이 긴급구호를 위한 것인지 재능있는 문인을 위한 창작지원금인지를 명확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구겐하임펠로우십’ 등 구미국가들의 문인지원 원칙은 대개 ‘재능있는 신진작가들이 작품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준다’는 것. 따라서 지원기간도 1년이 아니라 3,4년씩 장기간이며 아예 생계문제는 잊을 수 있도록 넉넉한 금액을 대준다.
반면 대공황기 루즈벨트정부의 ‘예술인지원정책(PWA)’같은 임시책은 구휼성을 명백히 했다. 정부가 학교나 지역사회에 문학강좌등을 마련해 고용을 창출한 것.
도교수는 “긴급구조의 성격이라면 일률적으로 작품만을 증빙자료로 요구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의 문학강좌나 시낭송같은 여타 활동도 인정해야하며 창작활성화를 위한 문인지원이라면 지원대상자를 대폭 줄이고 수혜기간도 늘려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