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출신 감독 피터 버그는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우정과 사랑같은 덕목이 산산조각 나버린 자리에 남은 비열한 욕망, 피로 뒤범벅된 잔인한 폭력을 잔뜩 부풀려 관객들의 눈앞에 불쑥 들이민다.
결혼을 앞두고 총각파티를 위해 미국 라스베거스로 떠난 신랑과 친구들. 자제력을 잃기 딱 좋은 상황에서 때마침 사건이 벌어진다. 정직하게 책임을 지면 좋았을 것을. “직선보다 곡선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로버트(크리스찬 슬레이터 분)의 꼬드김에 시체 은닉을 시도하면서 이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괴하고 황당한 소동을 목숨걸고 벌인다. 핑크빛 꿈을 꾸었지만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결과를 맞이하게 된 신부 로라(카메론 디아즈)가 길거리로 뛰쳐나와 울부짖는 마지막 장면. 평범한 인간들 속에 숨어있는 악마성, 비열한 욕망이 제어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걸 농담하듯 다루는 방식을 나무랄 순 없지만 갖고 노는 정도가 지나친 탓에 이 영화는 ‘베리 배드 무비(Very Bad Movie)’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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