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스물여덟살 젊은 나이에 네덜란드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예술감독으로 취임, 세계 무용계를 놀라게 했던 그다. 그것도 체코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몇개의 작품이 예술행정가들의 예리한 눈길을 반짝 붙들었을 뿐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이라 팬들은 깜짝 놀랐다.
그때로부터 25년, 4반세기를 맞은 킬리안과 NDT의 이름이 유럽을 후끈 달구고 있다. 네덜란드는 그동안 그를 위해 암스테르담과 덴 하그(헤이그)에 각각 두개씩의 극장을 지어주었고, NDT는 이제 세개의 상설단체를 가진 조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가르니에 극장의 연말을 장식한 ‘같은 부류의 하나(One of a kind)’등 킬리안의 신작들은 발표때마다 평단과 객석의 관심거리로 등장한다.
왜 그의 작품은 매번 객석과 평단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킬까.
킬리안은 항상 새로운 소재와 감각에 도전하면서도 고전과 이어지는 끈을 놓지 않아 왔다. 도약 발구르기 들어올리기 등 현대무용의 온갖 기법이 동원되지만 그가 고안해내는 신체언어는 고전발레의 품위있는 동작, 궁정의 향기를 연상케 하는 우아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우리 무용마니아들에게도 킬리안의 예술은 생소하지 않다. ‘킬리안 컬렉션’(필립스)등 그의 무용을 담은 영상음반을 통해 독특한 몸짓언어의 유머와 감각적인 재치는 잘 알려져 있다.
“킬리안의 무용을 감상하다 보면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공포 등 갖가지 감정이 폐부를 찌르듯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그 표현의 방법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익살맞기까지 하다는 점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죠. 킬리안만이 가진 매력이기도 합니다.”
무용평론가 이종호(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의 평.
젊은 이방인 안무가의 가능성 하나만 보고 네덜란드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고 지금 킬리안이 다듬어낸 NDT의 춤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눈밝은 예술행정가들과 문화에 투자할 줄 아는 정부의 의욕이 같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목 금요일 오후7시반, 토요일 오후6시, 일요일 오후3시. 96년작 ‘시작 그리고 끝’, 93년작 ‘이카루스의 날개’ 등이 소개된다. 02―580―1300(예술의전당)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