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사에서 19세기 러시아문학만큼 풍부한 1백년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 푸슈킨 외에도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떠올릴 수 있으며, 번역이 쉬워 서구에서도 널리 읽히는 문장가로 투르게네프와 체호프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 토속성과 문학적 기법 면에서 단연 고골리와 레스코프를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 작가로 꼽고싶다.
이 모든 화려한 전통의 선두에 푸슈킨이 우뚝 서 있다. 푸슈킨의 시가 탄생한 시기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출발점. 그가 서구 문학의 전통을 비틀어 러시아화한 소설이 19∼20세기 러시아의 산문을 촉발시켰다.
이번 ‘뿌쉬낀 전집’(전 6권/열린책들)과 ‘뿌쉬낀 선집’(전 3권/솔)의 출판은 이러한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번역 지도를 완성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0년대 동아일보에 그의 시가 처음 번역 소개된 이래 신연자 동완 이철 이종진 등 러시아문학자들에 의해 시와 산문이 꾸준히 번역돼 왔다. 그러나 이번 번역에는 희곡도 모두 포함돼 있다.역주도 예전보다 꼼꼼해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 여왕’,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에 익숙한 음악팬들도 원작을 이제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 읽을 수 있게 됐다.출판사 열린책들의 과감한 투자는 경이로울 정도다. 6권의 전집과 별도로 전문가용 양장본을 펴냈다. 역자인 러시아시(詩)전문가인 고려대 석영중 교수의 꼼꼼한 번역은 매우 돋보인다.
우리가 ‘오화섭의 셰익스피어’와 ‘최종철의 셰익스피어’를 구분하듯이 이번에 출간된 열린책들의 전집은 ‘석영중의 푸슈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영중 번역판에서 아쉬운 점은 회상 일기 평론 편지 기행문 및 역사자료 등 두 세 권 분량의 푸슈킨 저작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또 해설에서도 러시아 문학을 거의 모르는 독자를 대상으로 작품 배경을 쉽게 소개할 것인지, 기초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번역자의 독창적인 해석을 보여줄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원로 러시아문학자 박형규씨(전 고려대 교수)등 5명이 3권으로 출간한 선집은 번역본으로 삼은 문헌을 정확하게 밝힌 점과 열린책들에 비해 작가연보가 자세하며 여러 연구 문헌들을 소개했다는 점이 다르다. 푸슈킨의 기타 저작들은 열린책들과 마찬가지로 생략돼 있다. 그러나 산뜻한 표지디자인이 초보독자를 끌기에 손색이 없다.
이번 출판을 통해 19세기 러시아문학이 비로소 우리 땅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라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제 나보코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출발점으로 삼아 20세기 러시아문학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뿌쉬낀 전집(6권)
‘잠 안 오는 밤에 쓴 시’(시선집) ‘청동기마상’(장편서사시집) ‘예브게니 오네긴’(운문소설) ‘보리스 고두노프’(희곡집) ‘벨낀이야기’(소설·민담모음) ‘대위의 딸’(장편소설)
▽뿌쉬낀 선집(3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서정시·서사시 모음) ‘예브게니 오네긴’(운문소설·드라마 모음) ‘대위의 딸’(소설모음)
최건영(연세대교수·러시아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