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손씨 만석꾼 집안 출신 아버지가 신식 일본여성과 눈이 맞아 가정을 버리자 세 딸은 어머니 혼자 손에 컸다. 어머니가 온갖 궂은 일 마다않고 키운 맏딸은 연극에 미쳐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광대(배우 김성옥)’와 결혼해 어머니의 속을 태웠고….
자신의 이름을 딴 연극 ‘손숙의 어머니’를 공연하고 있는 손숙(55)의 얘기다. 어머니, 그저 불러만 보아도 눈물이 나올 듯한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연극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난달 27일 개막이후 매회 정동극장(서울 중구 정동)4백여석의 객석을 빽빽이 메우고 있는 이 작품은 제목처럼 손숙을 위한 연극이다. 매번 막이 내릴 때마다 분장실에서 할머니 분장을 지우고 있는 손숙에게 힙합바지 입은 젊은층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팜플렛을 들고와 사인공세를 펼친다.
석달전 그는 작가 겸 연출자인 이윤택으로부터 대본을 건네받고 전율을 느꼈다. 작품의 모델이 된 이윤택의 어머니와 자기 어머니의 삶이 거짓말같이 흡사했던 것.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집안을 살피고 자식들을 키워냈던 어머니의 희생정신,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다독거려 다시 세상으로 돌려 보내는 그 ‘치유의 힘’이 그 속에 있었다.
“거의 매일 방송일이 있지만 2개월간의 연습에 한번도 안빠졌어요. 연기가 몸에 ‘짝짝’붙는 느낌이었죠. 깐깐하기로 유명한 연출자가 공연 1주일만에 이젠 당신들끼리 알아서 노세요, 했을 만큼….”
4년 전 폐암으로 힘겹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때면 무릎에 힘이 빠진다는 손숙. 그는 연극의 성공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우리네 힘겨운 인생의 반증이라는 해석에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더라고 했다.
연극 자체의 힘과 어머니의 재해석 못지않게 작품 히트에 큰 몫을 한 것이 손숙이라는 배우다.
그는 데뷔이래 31년간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단아한 외모와 정확한 발성으로 ‘파우스트’ ‘신의 아그네스’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등에서 빼어난 연기력을 발휘해 왔다. 여기에 10년전부터 맡아온 MBC라디오 ‘여성시대, 손숙· 김승현입니다’진행을 통해 친숙하고 서민적인 느낌, 바른말 잘하는 올곧은 인상으로 많은 팬들을 지니고 있다. 평일 오후7시반, 토일 오후4시 7시반(화금 공연 쉼) 02―773―8960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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