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다 간암으로 요절한 시인 신동엽(1930∼1969). 생존했던 60년대보다 80년대에 더욱 애송됐던 그의 작품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저항시’로 읽혀져왔다.
4월7일은 그의 서거 30주기.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은 공동으로 ‘4월, 금강, 신동엽’을 주제로 △심포지엄(26일 오후3시 세종문화회관 소회의실) △문학의 밤(4월3일 오후6시50분 충남 부여 학생수련원 대강당) 등 기념행사를 잇따라 갖는다.그를 기리는 행사는 풍성하게 열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시대 때문에 편벽(偏僻)되게 읽혔다’거나 ‘온전히 읽히지 못했다’는 엇갈린 주장이 나온다.이번 심포지엄에서도 다른 해석이 맞부딪친다.
발제자인 연세대 영문학과 유종호교수(문학평론가)는 칭찬일색이기 쉬운 기념 심포지엄의 관행을 깨고 신동엽의 ‘역사인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미리 제출한 논문에서 시인의 대표작인 장시(長詩) ‘금강(錦江)’을 예로 들며 “시인은 역사의 행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가 한 세대 안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채 원시공동체사회를 이상향으로 꿈꾸었다는 것. 유교수는 나아가 그의 시가 억압적인 정치상황에서 금기시됨으로써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 당겼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금기의 충전없이’ 시 자체로서 읽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도 불온한 신동엽’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강형철교수는 “그의 시는 아직까지 온전히 읽히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신동엽 시 의식의 발단이 된 ‘6·25 체험’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
신동엽은 6·25때 북한 점령하에서 부여지역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을 지내다가 산 속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으며 이후 남한측의 국민방위군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강교수는 “좌우를 막론하고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 것이 그의 시의 근원적 모티브”라고 밝혔다.
한편 그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에 나오는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란 구절은 “분단된 남북(‘아사달과 아사녀’)이 ‘중립국가’로 통일됐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평론가 김윤태, 실천문학 99년 봄호)
그의 전주사범 후배인 소설가 최일남씨는 “작고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민족주체성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며 “시제(詩題)를 얻기 위해 임진강가를 떠돌다가 간첩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일반시민들을 위한 신동엽문학기행 행사를 4월3,4일 갖는다. 02―313―1486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