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귀국 사할린동포]『냉대 받으러 조국 왔던가』

  • 입력 1999년 3월 18일 19시 02분


‘조국의 품’은 생각만큼 따뜻하지 않았다.

40년대 일제의 징용 징병으로 사할린으로 끌려간 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이국땅에서 보냈던 사할린교포 1세대 8천여명. 이들중 5백여명이 영주귀국해 서울 인천 등지에서 살고 있으나 생활고와 병마, 친척들의 냉대 속에 하루하루를 쓸쓸히 보내고 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생활고. 매월 가족당 46만원을 받지만 주택(9평)임대비 8만원과 관리비 등을 빼면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97년 12월 귀국해 지난 2월 위암으로 사망한 서재덕씨(77)의 경우 치료비와 장례비 등 2백여만원을 사할린 가족들로부터 송금받아야 했다.

반세기 넘도록 낙후한 사회주의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낯설기만 하다. 한글을 깨친 사람도 많지 않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 이용조차도 어색해 외출도 삼가고 있다.

또 대다수가 앓고 있는 병마도 오랜 탄광생활 등에서 생긴 것으로 만성적인 경우가 많다. 97년 12월 귀국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정착한 40세대 80명의 교포 중 벌써 4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포들을 괴롭히는 것은 ‘외로움’. 국내에 사는 친척들은 귀국 초기에만 이들을 반겼을 뿐 이후 무관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교포들의 귀국자격이 ‘1세대’로 제한돼 사할린의 ‘2세대’ 자녀들과 생이별을 한 것도 이들에게는 고통이다.

70대의 한 교포는 “고향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50년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혹 내가 왜 자식을 버리고 여기 와있나 하는 후회가 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등촌4종합복지관에서 사할린교포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황영선(黃泳善·31)간사는 “자녀와 헤어진 채 고국 땅을 밞은 이들은 사실상 또다른 ‘이산가족’이 된 셈”이라며 “교포2세에 대한 대책도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 등촌복지관 앞 공터에 앉아 말없이 쉬고 있던 한 교포는 “우리는 조국을 그토록이나 그리워했는데…”라며 씁쓸히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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