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학사상 4월호에 실린 특집 ‘21세기의 성과 문학을 전망한다’는 이런 질문을 바닥부터 다시 점검한다. 왜 그러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됐는가를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살피고 있는 것.
문화비평가 서동진(계간 ‘리뷰’편집위원)은 “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한국사회에도 새로운 진실이 확립됐다”고 주장한다. 60년대 서구에서 ‘성(性)혁명’이 진행되며 “성에 어떠한 검열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변화를 한국사회도 닮아가고 있다는 것.
사이버문학평론가 이용욱(계간 ‘버전업’편집주간)은 여기에 더해 사이버공간이 가져올 성문화의 변화를 예견한다. “사이버섹스로 생물학적 본능이 충족되면 독신이 증가해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금기로 취급되는 동성애가 급속히 확산될 것이다”.
소설가 이남희는 성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이런 변화를 장편소설 ‘황홀’로 형상화했다. 98년 펴낸 창작집 ‘플라스틱섹스’에서 이미 동성애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동성애는 지탄받아야할 비정상적인 행위인가를 묻는다.
죽마고우인 유전공학자 출신의 작가 희진과 광고감독 찬영. 희진의 갑작스런 자살로 찬영은 스스로 부정했던 ‘남자친구와의 진정한 사랑’을 인정한다. 찬영을 사랑하면서도 이성(異性)과 애정없는 결혼을 했던 희진의 결혼과 이혼, 죽음. 희진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동성애를 충족하는 찬영. 작가는 성행위의 의미가 생식에서 놀이의 개념으로 바뀌었으며 앞으로 인공생식이 보편화되면 결혼이나 가정과 같은 사회의 기초단위도 흔들릴 것이라고 예견한다.
문학사상의 특집 필자들과 이남희의 상황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성 개념과 가치관으로는 성정체성의 혼돈이나 인간관계의 갈등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