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대학진학에 실패했을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을 자조하는 우스갯 소리다. 그러나 그 속에는 뼈아픈 진실이 담겨있다. 한국의 교육은 과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여건과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새 1천년의 터를 지금부터 닦아야 할 때는 아닌가. 한국 사학을 대표하는 연세대 김병수(金炳洙)총장과 고려대 김정배(金貞培)총장의 대담을 통해 그 해법을 모색해보았다. 두 총장의 대담은 3월22일 오전 본사 접견실에서 이루어졌다.
★지식半減期 짧아져★
▽김병수총장〓근대화 교육이 시작된 지 1백년이 지났습니다. 또 지금은 한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교육도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김정배총장〓역사적으로 보면 기원후 최초의 1천년은 농경사회였고 그다음 1천년은 농경 및 산업사회였습니다. 다가올 새 천년은 고도의 지식정보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 천년에 우리는 생활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맞을 것입니다. 우리교육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구석구석 변해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의 강국(强國)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대학교육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김병수총장〓많은 장비나 자원이 강국의 조건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종래 산업사회의 지식이라는 것은 한번 틀이 잡히면 20∼30년간 권위를 지켜왔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지식의 반감기(半減期)가 3,4년으로 짧아졌죠. 이런 급변하는 현실에서 대학이 변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배총장〓세계중심의 축이 미국에서 아시아쪽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학자들의 예상도 있습니다. 그 경우 우리나라도 아시아에서 유망한 국가중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너무 준비가 부족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컴퓨터 숫자만 놓고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1천명당 컴퓨터 숫자가 98.6대입니다. 반면 미국은 3백61대이고 호주는 3백11대이지요.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 싱가포르도 2백16대이고 일본도 1백28대로 우리보다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정보화에 뒤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정보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대학, 특히 사립대의 경우 정부지원이 없으면 인프라 구축이 힘듭니다.
▽김병수총장〓입시문제를 좀 이야기해 볼까요. 현행 입시는 암기위주입니다. 암기에 길들여지고 입시에 지친 학생들은 대학 입학 후 공부를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암기위주의 교육은 젊은이의 창조성도 많이 사그라뜨립니다. 지금의 입시는 특정분야에서 특출한 창조적인 두뇌를 뽑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목을 적당히 잘하는 학생들을 뽑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대학진학에 실패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나오겠습니까.
★대학원중심 교육으로★
▽김정배총장〓또 인재들이 의대나 법대같은 인기학과에 지나치게 몰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미래의 정보지식사회에는 맞지 않는 경향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의대나 법대는 전문대학원이 생겨야 합니다. 학부때 학생들이 폭넓고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후 대학원 진학때 다양한 분야로 분산돼야지요.
▽김병수총장〓그렇습니다. 대학입시는 ‘대계열 모집’위주로 가고 각대학은 연구중심 대학원 위주로 재편되는게 바람직합니다. 물론 학생들이 입학후 인기학과에만 몰려 기초학문 등 비인기 학문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크게 염려할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수한 젊은이들 중에서 기초학문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자율권 확보시급★
▽김정배총장〓일각에서는 시장경쟁원리에 따라 인기없는 학과는 퇴출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연세대나 고려대처럼 큰 대학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큰대학들은 인기 없는 학과도 학문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
▽김병수총장〓맞습니다. 지금 교육부가 일부 학생선발에 대해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 있지만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합니다. 기독교학교인 우리 연세대가 교계의 추천을 받아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권한 말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학교의 특성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으니까요. 암기위주로 공부한 학생들의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것은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김정배총장〓현재 교육부가 하고 있는 개혁 중 가장 미진한 곳이 바로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문제입니다. 규제가 너무 많아요. 모든 대학의 규제를 풀기 어렵다면 능력이 되는 학교부터라도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김병수총장〓대학에 자율권이 얼마나 부족한지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우리학교에서 기숙사를 지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모 지방대의 신청이 기각됐으니 형평성차원에서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한 일이지요.
▽김정배총장〓정부가 대학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줄수록 대학은 더 발전합니다. 그리고 규제가 많을수록 퇴보하게 돼 있습니다. 대학마다 특성이 있고 학풍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각대학이 상호 보완하며 발전할 수 있지요. 교육부가 자꾸 대학을 ‘획일화’시키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정책입니다. 또 기여입학제도 허용돼야 합니다.
▽김정배총장〓초중등학교 교사들에 대한 대우도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또 교사의 처우 개선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변화도 적지 않습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보화와 세계화에 대한 의식변화가 없으면 교사가 학생보다 뒤지는 상황이 생길 것입니다.
▽김병수총장〓초중고 교사는 학생의 적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이분들이 학생들의 창의적 생각을 길러줘야 합니다.
▽김정배총장〓각 대학간의 위상도 많이 달라져야 합니다. 똑같은 학과와 똑같은 구조를 가진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필요가 없습니다. 특징 없는 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인접한 대학간의 통폐합도 활발히 이뤄져야 하고요.
▽김병수총장〓다가올 21세기 대학상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죠. 사이버대학의 등장 등 교육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할 전망인데요.
▽김정배총장〓맞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훌륭한 교수라도 좁은 강의실에서 몇백명 정도밖에 못가르칩니다만 사이버공간에서는 무한대의 학생에게 강의가 가능합니다. 또 대학의 국경도 무너질 것입니다. 외국의 유명 대학들이 급속히 우리나라로 진출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부와 대학이 대비책을 마련해야겠지요.
▽김병수총장〓사이버시대가 되면 대학의 역할은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일반강의는 사이버공간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많이 개방되겠습니다만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는 여전히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21세기에 인류의 미래는 대단히 불확실합니다. 공해 인구폭발 자원고갈 등 산적한 문제들이 있지요. 우리 대학도 연구중심 대학으로 자리 잡아 이런 문제를 연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정배총장〓대학교육자체도 실용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나가면 일을 잘 못합니다. 현실과 학문이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김병수총장〓21세기는 국제화 시대가 되겠지만 민족단위의 민족주의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을 기초로 세계를 개척해 나갔으면 합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또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지역연고주의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좁은 땅덩어리 속에서 아웅다웅 하지말고 세계를 바라보는 진취적 기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병수 연세대 총장]
△36년생 △61년 연세대의대 졸 △85년 일본 국립오카야마(岡山)대 의학박사 △95년 대한암협회 이사장 △95년 장강재종양학 석좌교수 △99년 과기단체총연합회장
[김정배 고려대 총장]
△40년생 △64년 고려대 사학과 졸 △75년 고려대 문학박사 △80년 하버드옌칭객원교수 △82년 파리7대학 초빙교수 △92년 학술진흥재단 운영위원장 △97년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