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어느 자전거도둑의 「살아있는 양심」

  • 입력 1999년 4월 1일 19시 47분


그에겐 ‘씻을 수 없는 과거’였다. 비록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

인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송공석(宋公錫·48)씨는 27년 전 부터 그렇게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다.‘나는 자전거 도둑인데….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1일 오전 10시반 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의대부속 길병원 이길여(李吉女)이사장실. 말쑥한 신사복 차림의 40대 남자가 찾아와 불쑥 돈봉투를 내밀었다. 2천5백만원이었다.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십시오.”

다름아닌 송씨였다.

“조금이나마 죄값을 치르고 싶었습니다.”

송씨의 ‘과거’는 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고흥의 가난한 집안에서 3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송씨는 그해 무작정 서울로 와 구로구 가리봉동의 양변기 부품 생산업체에 취직했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회사 사정으로 6개월 만에 잃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빌리려고 서울 성동구 광장동에 사는 외삼촌을 찾아갔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자신의 거처인 가리봉동 ‘벌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건국대 정문앞 대폿집앞에 세워진 자전거를 보는 순간 욕심이 생겼다.

그는 자전거를 훔쳐 타고 내달렸다. 집 근처에 도착해 2천5백원을 받고 자전거를 팔았다. 라면도 사고 밀린 방세 일부도 해결했다.“라면을 끓여 먹는 동안 왜 그렇게 무섭고 눈물이 나는지….”송씨는 눈물을 삼키며 다짐했다. ‘언젠가 성공하면 주인을 찾아 용서를 빌고 천배 만배로 빚을 갚겠다.’

송씨는 갖은 고생 끝에 77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양변기 부품 생산업체인 신우워토스를 설립했다. 84년 인천 서구 당하동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종업원 40명에 연간 매출액이 30억원이 넘는다.

남몰래 소년소녀 가장과 불우노인들을 돕는 일로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애썼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찜찜했다. 그래서 며칠째 망설이다 이날 길병원을 찾았다.

“다 털어놓고 나니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두고 갚아나가야지요.”

길병원측은 송씨가 내놓은 돈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5, 6명의 심장병 환자를 수술하기로 하고 이날 우선 황선영(黃善映·14·인천 K여중 3년)양을 입원시켰다.

송씨는 이날 황양의 병실을 찾아 “수술비는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 27년 전 어느 자전거 주인이 내게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박정규기자〉roches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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