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정호승/김현승 시집「절대고독」

  • 입력 1999년 4월 2일 18시 31분


1972년 봄, 막 병장 계급장을 달았을 때였다. 틈틈이 군대의 막사에서 보초를 서면서 쓴 시 몇편을 당시 숭전대학교에 재직 중이시던 시인 김현승선생께 보냈다. 그러자 언제 휴가 한번 나오면 찾아오라는 말씀이 담긴 답장이 곧 왔다. 나는 선생의 편지를 내내 가슴에 품고 있다가 마지막 정기휴가를 나가 학교로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의 방은 커피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은 교수 연구실 다탁 위에 고독하게 앉아있는 난 화분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나는 선생이 손수 끓여주시는 커피를 들면서, 열심히 시를 써보라는 격려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탁 위에 놓인 선생의 시집 ‘절대고독’에 계속 눈길을 두었다. 그리고 그날 선생의 방을 나와 곧바로 ‘절대고독’을 구해 20대가 다 가도록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선생의 시를 흉내내었다.

선생의 시에는 맑고 순결한 인간의 마음이 있었다. 절대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었다. 고독한 인간의 삶에 대한 사색의 결정체가 보석처럼 빛났다. 그러나 선생이 노래하는 절대고독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며칠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절대고독’을 다시 펼쳐들었다. 책갈피에서 ‘다형(茶兄)김현승 시문학사상발표회’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는 인쇄물 한 장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쇄물은 73년 5월25일자로 인쇄된 것으로, 그날 선생은 병상에서 회복된 뒤 숭전대 강당에서 강연을 하셨다.

선생은 강연에서 당신이 추구하는 고독의 영역을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제3의 영역’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선생이 말씀하신 그 고독의 영역이 무엇인지 늘 알고 싶었으나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그러나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자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이 절대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아는 데에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 봄에 ‘내 고독에 돌을 던져본다’고 노래한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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