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중씨 첫개인전]고단한 삶 극복한「희망의 畵魂」

  • 입력 1999년 4월 5일 19시 17분


81년 가을 어느날 서울 노원구 월계동. 30세의 중소기업 외판원 김용중은 집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들과 붓과 물감을 모두 불살랐다. “그림이 돈이 되느냐”는 부인의 말을 듣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교과서의 그림들을 보고 반해 혼자 시작한 그림.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교졸업 후 인테리어회사직원 종이상자외판원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붓. 그러나 그 붓을 놓으니 인생의 희망이 사라졌다. 좌절감을 견딜 수 없었다. 1주일만에 다시 붓을 잡았다.

그로부터 5년 후. 김용중은 다시 그림들을 칼로 찢었다. 이번에는 스승도 없이 혼자 그리는 그림이 너무 막막하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이었다. 반대로 부인이 말렸다. 남편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후 10년 동안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는 노력 끝에 9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전시장을 찾아 다니며 홀로 연구하고 익힌 그림이 뒤늦게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대상수상 이후 첫 개인전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상’에서 열고 있다(3∼12일). 출품작은 풍경화와 인물화 60여점.

한때 추상화에 몰두했던 그는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풍경화를 시작했다. 그는 그림을 표면이 매끈한 천보다는 올이 굵고 성긴 마포 위에 그린다. 거칠고 투박한 화면이 더 정감이 들기 때문.

인물화에는 고민과 번민의 느낌을 담았다. 출품작 ‘어느 40대의 초상’은 자신을 그린 작품. 어두운 표정, 허름한 옷차림, 찢어진 신문지…. 생활의 고단함을 표현했다. 화면 중앙에는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청색 테이프가 거의 다 떨어진 채 간신히 달랑 달랑 달려있다. 거의 사라진, 그러나 아직 ‘조금’ 남아있는 꿈과 희망을 나타낸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사실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묘사를 함께 사용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현대인의 삶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그의 작품을 평했다. 디자인학원강사로 일하던 그는 대상수상 후 전업작가로 변신했다. 02―730―0030(갤러리 상).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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